그녀와 나는, 학창 시절에 건강 문제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공통점이 있었다. 둘 중 누군가가 과거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중, 고등학교 때 겪었던, 누구에게나 쉽게 이야기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섞여 있었고, 그 속에서 웃고 울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누군가는 "철없는 애들이 잠시 괴롭힌 것을 가지고 왜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괴로워 하느냐"며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우리가 힘들어했던 것은 단순히 놀림을 당하며 폭력을 경험하거나 돈을 빼앗긴 것과 같은 신체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원하지 않는 지시들을 강요받으면서도 그들에게 순종해야만 하루가 편안해지는 시간들이 반복되면서 받은 마음의 상처였다.

■내 마음이 없어진다=학교 폭력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일은 금전적으로 부족해진다는 부분이었다. 집에서 용돈을 가지고 나오더라도 학교에 오는 순간 일명 '검문' 이 시작된다. 말 그대로 주머니부터 가방까지 모조리 검색을 당하는 것이다. 화장실이나 운동장 구석 혹은 선생님이 들어오지 않는 시간 교실 뒤편 등 그 날 그 날의 상황에 따라 장소도 다양했다.

허락도 없이 자신의 가방을 뒤지고 돈을 빼앗는데 처음부터 가만히 있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항을 하게 되면 짧게는 몇 분에서 길게는 하루 종일 크고 작은 폭력이 이어진다.

이런 과정에서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내 의사는 없어진다. 괴롭히는 아이 말대로 따라야만 하는데, 내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슬픔도 기쁨도 없이 그저 "오늘은 무사히 지나갔으면"하고 바라기만 할 뿐이었다.

■다른 아이들에게도 전염이 된다=아무리 철저하게 비밀로 한 사람을 괴롭힌다고 해도 수십명이 함께 모여 생활하는 교실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밝혀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다른 아이들에게 역시 "나도 저렇게 해 볼까?" 라는 생각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그리 오래지 않아 괴롭히는 대상이 늘어나게 된다.

시달리는 사람은 몇 명으로 족하다는 생각에 반항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 돌아오는 것은 폭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이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 학교생활은 더욱 고달플 수밖에 없다.

지금은 결혼하여 딸을 낳고 학부형이 된 중학교 동창 녀석은 요즘에는 "그땐 그랬었지"라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 담담해졌다고 하지만, 한창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는 학교 앞 건널목에서 길을 건너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몇 번이나 울면서 고민했다고 한다.

오늘도 같은 고민을 하다 무거운 발걸음으로 학교에 들어가는 아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리라.

■자신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열등감이 강해진다=학교에서 시달림을 당할 때에는 가족과 선생님보다 다음날 아침에 고생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요즘 왜 이렇게 돈을 많이 가지고 가느냐" 는 어머니의 꾸중도 큰 걱정거리가 되지 못했고, 요즘 이상해졌다고 말하던 주변 어른들의 말을 귀담아 들을 처지도 아니었다.

이렇게 1년, 2년 시간이 흐르자 세상에 아무리 공부를 못하고 쓸모 없는 아이들도 나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열등감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가진 장점이라는 것이 있기는 한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이러한 심리적 열등감은 대학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조금씩 약해졌지만 지금도 그 때의 기억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이다.

그런데 왜 그 기억을 꺼내느냐고?

세월이 흘러 삐삐가 아닌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고, 전화가 아닌 채팅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대가 되었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원하지 않는 압박과 폭력을 경험한 아이들의 심리는 내가 겪었던 그것과 동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탁드릴 것이 있다.

누군가가 학교 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제 어른들이 알았으니 괜찮아" 라는 말보다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야"리고 말해주었으면 좋겠다.

폭력을 당한 것은 아이들 말대로 "맞을 짓을 해서" 가 아니고, 네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그 아이들을 앞설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보라고 말이다.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육체보다 마음의 안정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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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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