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에 만나면 우리 야구장에서 놀자. 갈 수 있지?"

신문지를 찢어 응원을 펼치는 것으로 유명한 지방 모 구단의 열혈 팬인 그녀가 야구장 데이트를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왔다. 야구 응원은 해당 구단의 연고지(홈구장) 에 가야 재미있지만 이 구단은 홈과 원정구단을 가리지 않고 팬들이 많이 오기에 구장에 관계없이 함께 모여 응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를 싹 날려준다며, 야구장 티켓까지 보여주었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지금은 국민 스포츠로 자리잡은 것이 야구이지만, 그 때만 해도 경기장에 관중이 줄어들고 있다며 그 원인을 찾기 위한 분석 기사를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당시로서는 야구장 데이트를 한다는 것이 흔하지는 않을 때였던 것이다.

“미안한데, 야구장에는 난간이 없어서 다니기가 힘들어. 거기 말고 다른데 가자"

축구, 농구와 함께 야구는 남성들이 좋아하는 스포츠 중 하나다. 초등학교 무렵부터 동네 오락실에 새로운 야구게임이 들어오면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속이 시원했을 정도로 나 역시 야구에 빠져 살았지만, 직접 관중석에 앉아 경기를 관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싫어서가 아니라, 야구장 관중석의 그 수많은 계단을 난간 없이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야구장에서 응원을 한다면…….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이었지만 난간이 없는 그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릴 때 나를 잡아주며 힘들어 할 여자친구의 얼굴을 보기가 미안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싫었던 것은 내 모습을 보고 관중들이 한 마디씩 던질지도 모르는 소리들이었다.

“여자친구가 착하네, 저렇게 불편한 사람 데리고 여기에 오다니."

“야구를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집에서 그냥 봐도 될 텐데." 등등…….

적게는 수천 명에서 많게는 수만 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야구장에서, 열 사람이 한마디씩만 해도 열 번은 이와 같은 소리를 들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니 야구장에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야구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지난 해 프로야구 경기장에 입장한 관중이 680만이라고 한다. 여기에다 미국에서 활약했던 박찬호 선수를 비롯한 해외파들이 우리나라로 복귀하면서 벌써부터 올 프로야구는 흥행 조짐을 보이며 기대감으로 충만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 관중 감소에 울상이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몸이 불편한 이들이 프로야구 경기를 관람하기에는 현실적인 장벽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화장실은 고사하고 관중석에 있는 수많은 계단에는 몸이 불편한 이들이 의지할 수 있는 난간이 없다. 때문에 계단 이용시 손잡이나 난간이 필요한 장애인은 관중석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장애인의 날에 몇몇 사람들을 야구장으로 초청해 경기를 관람하게 하는 것이 장애인 복지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관중석에 장애인의 접근이 용이해지고, 함께 응원이 가능할 때 몸이 불편한 이들도 비로소 관중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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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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