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월은 인천 송도에서 에스캅 정부 고위급 회의가 열린다. 이 회의에서 제2차 아태장애인 10년의 평가가 이루어질 것이고, 제3차 아태장애인 10년(새로운 10년)이 채택되면서 앞으로 10년간 아태지역 장애인들의 삶의 질 개선과 권리보장을 위한 인천 전략이 채택될 것이다.

에스캅은 3년간 이 행사 준비를 위해 매년 한 두 차례 회의를 개최해 왔다. 인천 전략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논의하기 위해 지난 12월 방콕에서 스텍홀더(이해 당사자-정부와 전문가와 NGO) 회의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43명이 참석했는데, 대부분 옵저버여서 발언권이 없었다.

한국에서는 새로운 10년의 제안국으로서 그동안 인천 전략의 민간 단체안과 정부안 마련이 있었고, 계획에 대한 자금 문제와 평가를 위한 지표 등 많은 연구와 대책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다.

에스캅 회의에 가기 전에 회의 순서를 받아 보고 프로그램은 알고 있었으나, 구체적 내용을 몰라 사실상 아무런 준비가 없이 참석한 꼴이 되었다.

프로그램에는 시민단체 대표를 설정하는 회의가 있다고 나와 있지만 어떻게 선발하는지에 대하여는 몰랐기때문에 에스캅에서 제시한 국제 장애인 단체의 리스트 15개를 통과시키는 데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인천 전략에 있어서도 정부안이나 한국장애인단체의 안을 반영하거나 강조할 사업에 대해 아무런 주장도 관철시키지 못했다.

장애인의 빈곤 문제에 대하여도 일일 2달러 이하의 소득을 가지는 장애인의 비율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목표가 첫째 목표인데, 한국의 경우 장애인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제도로 인해 이에 해당하는 장애인은 단 한 명도 없어서 이 목표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돼 버렸다.

모든 국가의 국제장애인권리협약의 완전한 비준과 이행을 목표로 하기를 원했지만 과중한 부담이 되는 목표는 정부간 회의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에 통과가 쉽게 되도록 하기 위해 반영은 거절됐다.

기금에 있어서도 한국측은 정부와 민간, 국제기구가 공동으로 기금을 만들어 아태재단을 만들어 당사자가 지출에 대한 권한을 가지기를 원했으나, 에스캅은 한국 정부가 에스캅에 기금을 신탁하라는 의사를 표명했고, 한국측은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정한 바 없다고 결정을 보류한 정도이다.

한국이 앞으로 상당한 기금을 출원하고 주도국으로 국제 무대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에스캅의 대접은 한국측을 인사도 시키지 않았고, 올해 행사에 대한 홍보도 없었다.

권리협약의 이행, 그리고 국내에서 잘 관철되지 않는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국제 무대의 공동 노력으로 이루려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의견도 대부분 무시됐다. 에스캅의 정부간 회의의 무사 통과를 위한 낮은 수준의 계획으로 인해 사실상 얻은 것이 없다고 과언이 아니다.

더구나 에스캅 국장과 일본 외상 사이에 무슨 밀담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에스캅 국장이 일본 외상을 만나고 온 후의 결과는 더욱 실망스러웠다.

에스캅 국장은 웃는 얼굴로 장애인 당사자들의 말을 충실히 듣는 모습을 보였으며, 말로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어떠한 의견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본 주도의 2차 아태 10년이 마무리되면서 일본측은 각종 에스캅 회의에 거의 참여하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대거 참석해 이번 대회는 일본의 독무대인 것 같은 인상을 남겼다.

일본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 발언권을 행사하며, 일본의 2차 10년 계획의 연장선으로 '비와코+5'라는 주장과 그들의 기여에 대한 강한 발언을 할 때도 한국은 그저 속수무책이었다.

그 외에도 △장애인을 위한 전문가의 활약이나 시각장애인들의 프로그램 개발사인 데이지가 당사자 시민대표 단체로 포함된 일, △일본 기금으로 운영되는 APCD의 지원으로 행사가 치루어진 점, △인천 전략의 마무리가 국제 시민단체의 손으로 넘어감으로 인해 한국 장애인 당사자들의 주장 통로가 닫혀버렸다는 점 등 너무나 아쉬운 행사였다.

준비나 전략 부족으로 참석자의 과반수를 한국이 채웠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의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일본 주도에서 한국의 너무나 왜소한 권한과 무시당하는 듯한 분위기를 잊을 수가 없다.

잘못하면 잔치만 열어주고 돈만 쓰면서 에스캅과 일본의 실적만 올려주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며, 앞으로 철저한 대비와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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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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