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예산을 심의하는 시기가 되면 장애인 예산이 얼마나 늘어나는가?, 장애인 현안 문제를 얼마나 해결해 줄 수 있도록 예산에 반영되는가?, 내가 속한 장애인 단체의 내년도 특화 사업 예산을 확보할 수 있는가? 등 예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아태 지역 60여 개국의 예산과 비교한다면, 한국이 일본이나 호주 다음으로 총 예산 대비 장애인 예산이 많은 국가일 것이다. 그래서 국제 비교 중 아태 지역의 국제 비교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고도 한다.

이러한 사실만을 근거로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아태 지역에서 상당한 수준의 장애인 복지를 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태 지역의 장애인 복지 수준은 너무나 열약하기 때문에 그것과 비교할 수는 없다.

가령 아태지역에서 국가 재정으로 활동보조 서비스가 이루어지는 국가는 4개 국에 불과하다. 더욱이 아태 지역의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제3차 아태장애인10년'(2013~2022)의 목표가 '장애인 과반수를 초등학교에 입학은 하도록 하자'는 정도이고, '1일 소득이 2달러(2200원) 이하인 장애인의 수를 절반으로 줄이자'는 정도이니, 거기에 한국을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은 어디에 비교해 수준을 논해야 할까?

한국은 OECD에 가입한 국가이다. OECD 국가들의 총 예산 대비 장애인 예산은 2% 이상이다. 반면 한국은 0.2% 수준이다. 그렇게 세계 모든 국가 순으로 따지자면 경제적 수준 12위인 한국의 장애인 복지 수준은 96위이다.

국가재정법 제26조에 의거, 국회나 정부가 예산을 정할 때에는 '성인지 예산'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성인지 예산'이란 예산이 여성과 남성에게 미치는 영향을 미리 분석한 보고서로 우리나라는 2006년 국가재정법 제정 시 최초로 도입돼 ‘10년 예산안부터 성인지 예산서를 작성해 예산안 국회 제출시 같이 제출하도록 규정(동법 제34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09년 예산편성 시 25개 기관, 105개 사업(약 5.5조원, ’09 전체 예산의 2.7%)에 대해 '성인지 예산'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실정이다.

'성인지 예산'이라는 개념을 장애인 예산과 결부시켜 '장애 인지적 예산'을 주장하는 사람이 자주 나타나고 있다.

국가가 예산을 수립하면서 그 예산 집행이 장애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장애인에게 적절한 혜택이 돌아가도록 배정하자는 원칙은 너무나 적절하고 설득력 있는 타당한 논리이다.

어떤 사람은 등록 장애인 인구가 국민의 5%인 250만이 넘으니 국가 예산의 5%는 장애인에게 배정해야 한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WHO(유엔 세계보건기구)의 보고서에 장애인 인구가 15%라고 하니 국가 예산의 15%를 장애인에게 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5%나 15%가 배정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그렇게 주장해야 조금이라도 더 확보할 것이 아니냐라고 말한다.

그런데 '인지적 예산'은 그 영향을 고려해 포괄적 예산을 수립한다는 의미이지 그 인구 비율만큼 예산을 배정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만약 인구 비율을 인정해 예산을 배정한다면 남성 50%, 여성 50%, 장애인 5%, 노동자 70% 등등 장애인이면서 남성이고, 노동자이면서 성인이고, 그러면서 노인이고 등등 한 사람이 여러 계층에 속하는 속성으로 인해 정부 예산은 수천 퍼센트를 투입해도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장애 인지적 예산' 원칙을 적용해 장애인이 배제되지 않도록 예산 집행에서 장애인의 영향 평가를 하는 것은 분명 장애인 예산의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OECD 국가의 평균과 격차를 줄이자는 주장도 분명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예산의 구체적 쓰임새 욕구와 효과성, 장애인의 피폐한 삶의 현장, 장애인의 삶의 질 변화와 가치 등등 예산 증액의 타당성을 주장할 근거는 많다.

그러나 막연한 예산 증액은 없다. 시급하고 효과적인 사업을 제시해야만 예산 증액이 가능하다. 백분률(%)로 잡아 통으로 예산을 늘리지는 않는다.

헌법 제57조에 '정부가 제출한 예산에 대하여 국회는 정부의 동의 없이 에산을 변경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어 심의 의결은 국회가 하지만 반드시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있다.

아무리 국회의원에게 예산의 증액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정부가 수용하지 않으면 그 예산은 절대로 추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반대로 예산에 반영되지 않은 것을 다시 협의할 기회가 정기 국회에 있는 것이며, 여기에는 반드시 정부의 협력과 동의가 필요함을 알아야 한다.

진정 장애인 예산을 늘리려면 정부가 수용하도록 설득을 해야 하고, '장애 인지적 예산'의 필요성을 주장하려면 '성인지'가 법적으로 통용되는 것처럼 장애인 예산도 법으로 규정하도록 국가재정법 개정 운동으로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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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환 칼럼니스트
현재 사단법인 장애인인권센터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고용안정지원본부장을 맡고 있다. 칼럼을 통해서는 아·태 장애인, 장애인운동 현장의 소식을 전하고 특히, 정부 복지정책 등 장애인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슈에 대해 가감 없는 평가와 생각을 내비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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