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 '생존'이라고 읽는다. ⓒ에이블뉴스DB

입동이 지나 절기상으로 겨울이 시작되면 그녀는 "눈이 왔을 때 출근은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을 달고 살았다. 눈길이나 빙판길 위에서는 평지보다 더욱 긴장하며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데, 그러다 보면 쉽게 피로를 느끼게 되어 출근 시간이 오래 걸릴뿐 아니라 힘이 떨어진 상태에서는 미끄러져 다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눈이 쌓인 가운데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거나 대설주의보가 내려 눈이 쌓이는 아침이면 평소에 자주 다니던 버스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행여 미끄러지지 않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버스 정류장에 나왔어도 힘겹게 올라탄 버스에 자리가 없는 경우에는 사무실에 도착하기도 전에 지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했다.

눈이 오는 날에도 직장에서 평상시와 같은 컨디션으로 업무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머니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방법 말고는 다른 길이 없었다.

눈 쌓인 아침에는 어머니가 회사 앞까지 데려다 준 후 집으로 돌아가고, 퇴근 전에 눈이 내리면 직장 동료들이나 상사들의 도음을 받아 택시나 버스를 이용한 뒤, 집 근처에 내려 부모님에게 데리러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그러다 보니, 눈이 오는 날이면 여자친구가 퇴근하기 전까지 그녀의 가족들은 항상 초긴장 속에서 지내야 했고, 결국 "겨울마다 식구들이 너에 대해 걱정이 많으니 다른 일을 찾아봐라"는 가족들의 권유를 받아들여 집 근처로 일자리를 옮겨야 했다.

1급 이외의 다른 등급에도 활동보조인이 필요하다

출퇴근길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만 있었다면 지금 다니는 직장보다 더 나은 급여와 이미 익숙해진 업무로 인해 편안한 마음으로 근무할 수 있었던 회사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내게 말했다.

회사 내에서의 업무 처리 및 생활에는 지장이 없으나 장애로 인해 겨울철 궂은 날씨에 출퇴근이 힘든 장애인들에게 활동보조서비스의 도입은 '복지'가 아닌 '생존'의 문제다.

초등학교 시절 자녀에게 위급한 일이 생기면 자식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었던 어머니는 이제 허리가 아파 계단을 내려가기도 힘들고, 오랫동안 서 있기에도 불편함이 따른다고 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함께 연탄을 지하실로 나르던 아버지는 조카들에게 '할아버지'로 불리게 된 지 오래다. 바꿔 말하면 부모가 장애를 가진 자녀들의 출퇴근을 보조할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부모님이 더 기운이 없어 거동이 힘들어질 때가 오면 자신도 출근 자체를 하지 못하고 집에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농담 섞인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이 현실이 된다면 연로한 부모가 자녀의 경제적·심리적인 자립을 믿고 편안히 노후를 보낼 수 없을 것이고, 직장이 없어 고정된 수입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결혼조차 힘들어질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녀와 나는 동일하게 장애 2급이었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도, 일자리도 있었지만 늘 겨울만 되면 그녀와 나 모두 통근 전쟁에 시달렸다.

만약 활동보조인 제도가 1급뿐만 아니라 다른 등급에도 확대가 된다면 보다 많은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와 보다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적어도 출·퇴근은 아무런 걱정 없이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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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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