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라디오 방송 뒷이야기, 유년시절과 연애, 장애인 푸른 아우성에 관한 이야기 등 43개 토막으로 꾸며졌다. ⓒ일송북

아이는 시골집에서 녹음기를 만지작거리며 혼자 논다. 집안이 기울어 내려온 할아버지 집. 중학교도 다닐 수 없고, 혼자선 방밖으로 나갈 수 없는 탓에 친구도 없다. 하루종일 라디오로 세상을 만나며 아이는 꿈을 그려나간다. 장래 희망, 라디오 아나운서.

장애를 장점으로 승화시키라는 아버지의 격려. 아이는 미래를 낙관한다. 뇌성마비쯤이야 문제될 게 없다고. 오히려 장애는 주목을 끌어, 꿈으로 가는 다리가 되어 줄 거라고.

세월이 흘러 아이는 여자가 되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남들처럼 살아갈 뿐인데 사람들은 운좋게 ‘천사표’ 남편을 만났다며 흘낏거린다.

화장실도 밖으로 돌아나가야 하는 단칸방. 몸이 아픈 아기와 겨울나기가 두려웠던 가족은 성금 모금 방송에 출연한다.

“남편에게 제일 미안한 때가 언제인가요?” 진행자의 뻔한 유도 질문에, 모른 척 그녀는 제 할말을 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저의 장애 때문에 미안했던 적은 없습니다.”

손발 대신 입담으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그녀. 다큐 프로그램 ‘인간극장’에서 나갔을 때, 이런 그녀를 고깝게 여긴 몇 사람이 시청자 게시판에 쓴소리를 남겼다. 화장실 출입, 밥상을 차리는 일에도 멀쩡한 남편의 도움을 빌려야 하는 몸. 그 몸으로 할 말 다하며 사는 당당함을 누군가는 참기 어려웠던 게다.

조윤경씨는 인터넷 방송 ‘민중의 소리’에서 ‘장애인 푸른 아우성’을 진행하고 있다. ⓒ조윤경

그에 주눅들지도 않았는지 그녀 참 겁없이 앞서나간다. 구성애씨와의 만남을 계기로 ‘장애인 푸른아우성’이란 단체를 설립하여, 장애인의 성과 사랑을 터놓고 전파하는 야한(?) 여자가 되었다.

인터넷 방송을 뚫어 소원하던 라디오 진행자도 되었다. 직접 쓴 방송 대본으로 발칙하게 발랄하게 방송 50회를 넘긴 그녀. 이 책 ‘조윤경의 핑크 스튜디오’는 포기 않고 전진해 온 그녀 삶의 중간 결산이다.

책장을 넘기다 내친 김에 ‘민중의 소리’ 방송을 찾아갔더니 여자가 모르는 남자의 마음, 데이트 비법을 전수하고 있다. 그녀, 꽤 박식하다. 뇌성마비 장애인의 어눌함이 살짝 배어있는 말투. 잠깐 사이 익숙해져 그녀의 진실에 귀가 열린다. 그렇다. 꿈만으로 이 자리에 선 게 결코 아니다.

*조윤경의 핑크 스튜디오/ 조윤경 지음/ 일송북 펴냄

*조윤경의 장애인푸른아우성 방송 듣기 www11.vop.co.kr/new/VOP8/media/radio_09.html

*예다나 기자는 지난해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다가 올해부터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장애인당사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