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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성도가 붙잡아야 할 것 (히 3:7-14)
카테고리 : ╁'성경강해 | 조회수 : 102020-02-20 오전 6:08:00

요한복음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창세전 언약 (에베소서 1장 3-10)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정낙원 목사

'성도가 붙잡아야 할 것 (히 3:7-14)


수변 공원에 산책을 나가면 이따금 씩 어떤 분이 전도를 해요.


지나가는 사람들 뒤통수에 대고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라고 해요.


제 귀에 들리는 이 말은 나는 예수 믿어서 천국에 가니 당신들도 나처럼 예수 믿어서 천국에 가야 되지 않느냐 라는 말로 들려요.


사실 전도하시는 그 분도 이런 사고로 전도를 할 것이라 생각이 되어져요.


왜냐하면! 한국교회에서 배운 전도 법이라면 이것 이상 나올 수가 없어요.


 


흔히들 사람들이 예수 믿으면 천국 간다고 합니다.


천국 가기 위해서 예수 믿는다고 해요.


이렇게 되면 예수는 내가 천국 가는데 도움을 주는 도우미에요.


내가 천국에 가고는 싶은데 내 능력으로는 부족하니 예수의 능력을 보태서 가겠다는 겁니다.


 


이 말을 곰곰이 음미해 보면 천국에 가고 안 가고를 내가 결정하는 겁니다.


천국에 가고 싶으면 예수 믿어 주면 되고, 가기 싫으면 안 믿으면 돼요.


액면 그대로 말하면 그렇다는 말입니다.


 


“예수 믿고 천국가세요” 라는 것은 육에 속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전도 방법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인간은 모든 결정을 내가 하여야 하기 때문이에요.


죄인은 스스로가 신이예요.


의사 결정권이 자기에게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내가 예수 믿고 싶으면 믿고, 믿기 싫으면 안 믿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런 사고방식이 결국엔 예수 믿는 것도 복을 따 내는 수단으로도 이용이 되어요.


세상에서 출세하고 복은 받아야 하겠으니 하나님께 자기 열심을 담보로 거래를 하는 겁니다.


내가 이만큼 하나님께 충성을 해 줄테니 그 대신 하나님은 내 소원을 들어 달라는 겁니다.


 


이런 사상을 교리로 가진 교단이 침례교나 감리교에요.


이들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은혜를 주어도 내가 거부하면 받을 수 없다고 해요.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결단을 많이 촉구를 해요.


여러분이 마음 문을 여시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라고 합니다.


C.C.C에서 사영리(四靈理) 전도 법이 다 이런 사상에서 나온 겁니다.


지금은 침례교나 감리교뿐만 아니라 모든 교단들이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므로 대동소이해요.


성경을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전도를 하는 겁니다.


 


왜? 이런 것이 교파를 초월해서 교회 안에서 횡행하느냐 하면 교인들의 열심과 충성과 헌신을 끄집어내려면 이 방법 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자유의지를 하나님께 충성하는 쪽으로 활용하라고 강조하지 않으면 안하기 때문이에요.


 


교회를 위해 열심을 이끌어 내려면 인간의 가치를 최대한 높여 주어야 해요.


집사님! 참 위대하십니다.


남들은 다 돈을 생명처럼 여기는데 집사님은 어떻게 그런 큰돈을 선뜻 하나님께 헌금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참으로 집사님 믿음이 대단하십니다.


집사님 믿음이 부럽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실 수 있어요! 라는 멘트를 날려 주면 이미 혼이 빠져 버려요.


 


목사의 칭찬이 곧 몰핀이 되어서 안 들으면 힘이 빠져요.


그래서 칭찬 듣기 위해서 또 다른 열심을 내는 겁니다.


종교성으로 교회 다니는 교인들은 어떻게 그렇게 믿음이 좋으세요? 라고 칭찬을 하면서 붕붕 띄워 주면 죽을 둥 살 둥 미친 듯이 하거든요.


자기 가치를 높여 주는데 안 할 인간은 없어요.


 


이 시대는 모든 주권이 인간에게 있어요.


교인들을 신의 자리에 앉혀 놓았어요.


예수 믿는 것도 내 결정 사항이고, 천국 가는 것도 내 결정사항이에요.


교회 오는 것에서부터 봉사하고 충성하고 헌금하는 것 모두가 내가 결정하여서 하고 있어요.


 


예수도 마음에 안 들면 안 믿어요.


예수님도 내 손안에 있소이다! 가 되었어요.


하나님도 인간들에게 대접을 받고 싶으면 인간들 비위를 맞추어 주어야 해요.


괜히 비위 상하게 하면 국물도 없어요.


언제든지 예수를 버리고 부처에게로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교인들 눈치를 살펴야 밥(?)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는 곳이 지금 이 시대 교회에요.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렇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예수 믿게 해 주지 않으면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어요.


또 내가 예수 믿기 싫다고 해서 안 믿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인간이 결정할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이 결정을 하세요.


 


야곱과 에서처럼 이미 정해져서 태어났어요.


하나님이 배치를 그렇게 해 놓았어요.


하나님께서 야! 정낙원이 너 천국 가! 그러면 난 꼼짝없이 천국에 가야해요.


반대로 난 천국 가고 싶은데요! 라고 하면 하나님이 꺼져! 그러면 소용없어요.


 


그러니 이 시대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하고 전혀 달라요.


이 시대 교회는 상식이 통하는 곳입니다.


상식이란?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인간의 생각을 근거로 하고 있어요.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상식이나 이성을 거부해요.


도리어 인간의 상식이나 이성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라는 말이 맞는 것 같지만 틀린 말이 되는 겁니다.


 


그럼 목사님은 어떻게 전도해야 합니까? 라고 묻겠지요.


저도 “예수 믿으세요” 라고 합니다.


 


아니! 그 말이 그 말 아닙니까?


맞아요.


그 말이 그 말이에요.


 


제가 전도 방법을 가지고 시비거는게 아닙니다.


사실이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누구라도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게 해 주지 않으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예수 믿으세요! 라고 전도하세요.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라고 해도 하나님께로 나지 않은 자는 안 믿어요.


아니 믿고 싶어도 못 믿어요.


안 믿겨지니까요.


그러니 누가 예수 믿으세요! 라고 해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그 믿음은 하나님께서 믿게 해 준 믿음이라고 말해 주세요.


그래야 예수 믿는 것을 자기 자랑거리로 두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겁니다.


 


전도는 어떤 말을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가 이런 일을 발생케 하였느냐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겁니다.


예수 믿는 것을 우리 행위로 가지고 있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로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당신이 예수 믿는 것이 다 하나님의 선물이고 은혜라는 것을 알려 주어야 해요.


 


왜? 이런 말을 하는고 하니 인간이란 무슨 일을 하여도 자기가 한 것으로 붙잡고자 하기 때문이에요.


자기 힘으로 구원을 따 내고자 해요.


내가 열심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어요.


 


이런 사고방식으로 하나님을 믿다가 탈락한 사람들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사람들이에요.


 


오늘 본문을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중도에서 탈락한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실패한 이야기에요.


 


우리는 흔히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다 구원 받았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막았다고 해요.


 


히브리서 기자가 지금 이런 말을 하는 것은 경고하는 겁니다.


구약 이스라엘을 본보기로 잘 봐라!


그들이 다 구원 받은 것이 아니란 겁니다.


구원에서 탈락한 것은 뭔가를 붙잡아야 되는데 붙잡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견고하게 붙잡지 않아서라고 합니다.


이로 보건데 가나안은 뭘 붙잡고 들어가는 곳이란 말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주신 것을 붙잡게 한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붙잡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께로 난 자가 아니런 거예요.


히브리서 11장 식으로 말하면 믿음이 이들을 붙잡고 있다는 말입니다.


약속이 이들을 끌고 다닌다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것은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이 뭐냐? 라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겁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붙잡으라고 한 것을 붙잡지 않으면 헛물만 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난 천국에 간다고 여기까지 달려 왔는데!


하나님께서 너 꺼져! 라고 말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내 열심과 충성의 문제가 아니고 정답의 문제에요.


하나님이 제시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하나님이 주신 답이 아니면 그 누구도 안식의 세계에 들어 갈 수가 없어요.


그러니 예수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 줄 알아야 해요.


 


제가 간증적으로 늘 말하잖아요.


수십 년 동안 예수도 안 믿으면서 교회에 다니고 예수 믿는 척 했다고!


인간은 얼마든지 믿지도 않으면서 믿는 척 할 수 있는 사기꾼들이에요.


예수님이 그러지요.


너희 아비는 마귀라고!


그러면서 마귀는 처음부터 속이는 자라고!


거짓의 아비라고 하잖아요.


맞아요.


마귀는 속이는 자에요.


사기꾼이에요.


그 마귀의 피가 우리 속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인간들은 일평생 속고 속이고 사는 겁니다.


하나님도 속이고자 해요.


예수 믿지도 않으면서 믿는다고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이 거짓신앙에 속지 않아요.


 


이스라엘의 광야는 거짓 신앙을 솎아 내는 곳이에요.


가짜들을 다 걸러내는 곳이란 말입니다.


가짜들을 걸러내고 보니 대 다수더란 말입니다.


진짜는 몇 안 되고 거의가 다 가짜라는 거예요.


 


지금 히브리서 기자는 3장 4장에서 이런 놈은 가짜고 이런 사람만 진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이스라엘을 예를 들어서 지금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지요.


표면적 이스라엘과 이면적 이스라엘이 있다고 하지요.


즉 진짜 이스라엘과 가짜 이스라엘이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구약 이스라엘은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가를 보여주는 시청각 교제가 되는 겁니다.


맞아요.


구약 이스라엘은 시청각교제에요.


이를 일컬어 “기능적 이스라엘” 이라고 해요.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 선택된 자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니 구약 이스라엘을 몽땅 저주 받았다고 하면 안 돼요.


우리는 선악의 법이 있어서 뭐든지 심판하고자 해요.


광야에서 멸망당한 이스라엘이 구원 받았을까! 안 받았을까?


여러분도 궁금하지요.


 


제가 대신 대답할게요.


구약 이스라엘은 탤런트에요.


탤런트는 악역도 있고 선한 역도 있어요.


구원 받은 자도 있고 탈락하는 자도 있어요.


어떤 사람은 탈락하는 배역을 맡았고, 어떤 사람은 구원되는 배역을 맡은 겁니다.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두 편으로 나누어서 드라마를 찍은 겁니다.


그러니 누가 구원을 받고 누가 탈락을 하였을까 라는 것은 신경 쓰지 마세요.


중요한 건 이들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 하시는 겁니다.


 


흔히들 구약은 신약을 전제로 하고 있고, 신약은 구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요.


그러니 구약은 장차 신약에 나타날 사건을 이스라엘을 통하여서 미리 보여준 겁니다.


반면에 신약은 이미 구약에서 보여 주었던 사건대로 성도를 다스려 간다는 말입니다.


 


물론 진짜 구원 받은 자도 있고 저주 받은 자도 있어요.


그건 우리가 알바가 아니에요.


그건 하나님만 아세요.


 


그러나 제가 앞으로 말씀을 전개하는 과정에선 드라마 내용만을 가지고 말합니다.


그러려면 저주 받은 자는 저주받았다고 하고, 축복 받은 자는 축복 받았다고 말을 하는 겁니다.


잘 이해하고 들으세요.


 


누가 저에게 목사님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망 받았는데 그들은 다 지옥에 갔나요! 라고 물으면 그건 제가 알바가 아닙니다! 라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제가 알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일을 하신다는 것뿐이에요.


 


가나안에 들어간 것으로만 본다면 모세도 지옥에 갔다는 말이 되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거든요.


모세는 분명이 천국에 갔어요.


예수님께서 변화 산에서 재림 할 때 모습을 보여 주실 때 모세와 엘리야를 대동하고 오신 것을 보니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진 못하였지만 천국에 간 건 확실하잖아요.


 


그러니 가나안에 들어갔다 못 갔다 만을 가지고 천국 갔다 지옥 갔다 라는 이분법적 사고로 말하지 말란 말입니다.


물론 광야에서 저주 받은 사람들 중에 지옥 간 사람도 있어요.


고라 일당과 같은 자들은 유다서에 보면 지옥에 갔다고 해요.


하지만 분명하게 기록이 되지 않는 것은 그게 누구라고 단정적으로는 말하지 마세요.


그건 우리가 알바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을 강해하면서는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것으로 말해야 하기 때문에 구원 받았다 못 받았다 라고 분명하게 말을 합니다.


드라마 내용이 분명하니 그렇게 말을 하는 겁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약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드라마를 찍는데 동원된 탤런트들이에요.


하나님께서 이런 자는 저주 받고 저런 자는 축복 받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드라마를 찍다가 보니 두 편으로 갈라지는 겁니다.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은 항상 두 편으로 갈라져 충돌하면서 역사가 이루어진 겁니다.


핍박하는 자와 핍박당하는 자로 갈라져요.


가인과 아벨로 갈라지고,


이삭과 이스마엘로 갈라지고,


야곱과 에서로 갈라지고,


레아와 라헬로 갈라지고,


요셉과 다른 형제로 갈라지고,


다윗과 사울로 갈라지고,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로 갈라지고,


예수님의 12제자와 유대인으로 갈라져요.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는 갈라내고 또 갈라내고 또 갈라내는 역사에요.


다 맞는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면 또 그 속에 가짜들이 있어요.


그러면 추려냅니다.


추려내고 이제는 없겠지 하다가 보면 또 가짜들이 일어나요.


그러면 또 어떤 사건을 일으켜서 또 갈라내요.


 


좌우지간 하나님은 창세기 1장의 창조 모습과 같이 빛과 어둠을 갈라내고, 궁창 윗물과 궁창 아랫물로 갈라내고, 땅과 바다를 갈라내듯이, 갈라내고 또 갈라내는 일들을 인간들 역사 내내 단행을 하십니다.


늘 창조 작업을 하신단 말입니다.


구약에선 이스라엘을 통하여서 보여 주셨고 신약에선 교회를 통해서 보여 주세요.


 


신약교회의 역사도 마찬가지에요.


12제자들로부터 시작이 되어진 교회가 구교(천주교)와 신교(기독교)로 갈라지고,


흔히 말하는 개혁교회인 기독교 안에서도 갈라지고 또 갈라지고 했어요.


 


지금은 예수 안에 있는 자와 예수 밖에 있는 자로 갈라져요.


육적인 교회와 영적인 교회로 갈라져요.


어떻게 갈라지느냐?


붙잡는 것으로 갈라져요.


무엇을 붙잡느냐로 갈라진단 말입니다.


 


예수의 피를 붙잡느냐!


인간의 행함을 붙잡느냐!


우리 생각엔 교회라고 하면, 교인이라고 하면 다 예수님에 것을 붙잡을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러나 그건 순진한 생각이에요.


이상하게 교회라고 하면서 교인이라고 하면서 예수의 피를 싫어하는 인간들이 있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하면 짜증내는 인간들이 있어요.


 


예수의 피 뿐이라고 하면 신경질을 내는 종자들이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교회 역사는 항상 피의 역사로 점철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어요.


이 싸움에서 항상 진짜들은 당하게 되어 있어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죽임 당해요.


그래서 나중에 하나님이 세상을 불 태워 버리는 겁니다.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이미 천국에 간 믿음에 선진들이 하나님께 탄원하지요.


하나님이여! 언제까지 저 원수들을 그대로 둘 것입니까?


빨리 유황불을 쏟아 부어서 끝장을 내 주십시오! 라고 하지요.


 


그러자 하나님이 조금만 기다라고 합니다.


왜? 기다려야 합니까? 라고 물으니!


아직도 너희들처럼 죽임 당하여야 할 너희 동무들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그 동무들이 너희들처럼 다 죽으면 그 때 끝장내겠다고 합니다.


세상에!


 


그러면 지금 예수 안에 있는 성도의 운명은 죽임 당하기로 작정이 되어서 세상에 남겨져 있는 자들인 겁니다.


예수님처럼 죽임 당하기로 작정이 되어서 남겨진 자들이 성도들이에요.


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육적으로 보면 너무 불쌍해요.


하지만 예수님과 한 운명이기 때문에 축복인 겁니다.


예수님처럼 부활이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죽어도 축복인 겁니다.


 


성도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12 사도들처럼 예수님의 피만 증거하다가 육적 교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여도 안타까워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단소리 듣고 미움 받고 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세요.


여러분 속에 예수의 피가 없으면 미움 당하지도 않고 핍박당하지도 않아요.


모두가 예수님의 피가 있기 때문에 이단 소리도 듣고 미움도 받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다가 핍박 당하면 아! 내가 예수님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감사하세요.


 


마귀가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고 여러분(정낙원)도 안다고 해야 해요.


마귀가 여러분을 몰라주면 큰일 나요.


여러분! 죽어도 마귀에게 죽어야지, 하나님 손에 죽으면 큰일 나요.


마귀에게 죽지 않으려고 하지 마세요.


마귀가 안 죽이면 마귀와 같은 편이란 말이에요.


 


예수님이 그러셨지요.


너희가 세상에서 미움을 받거들랑 내 것이기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라고 했잖아요.


그러니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거들랑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신 겁니다.


 


시작부터 사설이 너무 길었는데 이제부터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가를 살펴봅시다.


 


알다시피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목적은 가나안 땅에 가기 위함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 하실 때 네 후손들이 4백 년 동안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살다가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겁니다.


약속대로라면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선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들어갈 가나안은 약속의 땅입니다.


그러니 가나안은 신약적인 의미에선 천국의 모형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출애굽한 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곤 전부 탈락을 하였잖아요.


이렇게 되면 표면적으로 본다면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천국에 갔고 나머진 몽땅 지옥에 갔단 말이 됩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은 표면적으로 보면 상당히 무서운 말씀입니다.


문자적으로 들으면 야! 이거 천국가는게 힘들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이런 내용이 성경에 있으니 목사들을 그러잖아요.


그 따위로 신앙생활해서 천국에 가겠느냐? 라고 공갈 겸 협박을 하는 겁니다.


봐라!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대들고 말 안 듣다가 몽땅 광야에서 죽지 않았느냐?


성경을 똑똑히 봐라!


내가 없는 말을 하는게 아니지 않느냐?


구약 이스라엘은 거울이 아니냐?


 


이렇게 되면 교인들은 목사의 말에 매이고 맙니다.


어떻게 반박 할 수가 없어요.


성경이 나와 있으니까요.


성경을 안 믿는다고 하면 반발을 하겠는데!


분명이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기가 성경에 대문짝만하게 기록이 되어 있으니 이건 반박도 못해요.


 


그러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어요.


천국에 가려면 그 수밖에 없어요.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구약 이스라엘백성들처럼 모세 말 안 듣다가 전부 광야에서 생 매장당한 꼴을 당할 것 같으니 허는 수 없이 순종 할 수밖에 없어요.


 


이정도 되면 신앙생활이 짐입니다.


속된 말로 천국엔 가야겠고!


그러자니 믿어지지도 않는 예수를 믿는 척은 하여야겠고!


믿어지지도 않는 예수를 믿는다고 하여야 하니 죽을 지경입니다.


교회 안 다니자니 뭔가 불안하고 찜찜하고 가자니 힘들고 이거 진퇴양난(進退兩難)이에요.


 


애굽으로 돌아가자니 홍해바다가 있고 가나안으로 가자니 생고생을 해야 하고!


아! 내 팔자야!


내가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서 이 개고생을 하고 있나!


광야에 나와서 신세한탄만 하는 겁니다.


마치 이 시대 교인들이 교회 나와서 신세한탄 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은 신약의 교인들을 보여주는 시청각 자료라고 한 겁니다.


 


이거 빠져 나갈 구멍이 없어요.


에라! 까짓거 천국 안가고 말지! 그러면 간단한데! 그러지도 못해요.


육신이라는 몸뚱아리가 지옥을 불안해하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요.


육신은 믿어지지 않지만 믿는 척이라도 해야 마음이 진정이 된단 말입니다.


주일날 교회라도 가서 앉아 있어야지 한 주간이 편해요.


몸뚱아리가 지옥에 가면 구더기도 죽지 않고 영원토록 유황불 속에서 닭튀김 당하듯이 고난당한다고 하니 무서워서 지옥엔 갈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 지옥에 안가고 천국에 가려면 다른 방법이 없는 겁니다.


힘들더라도 목사 말을 듣는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되면 내가 열심을 다해서 천국을 침노하는 수밖에 없어요.


구약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대들다가 망했다고 하면 난 목사에게 안 대들면 될 것 아니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될 것 아니냐!


그래서 눈만 뜨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고행(苦行)을 하는 겁니다.


 


이러면 마귀는 멋지게 성공한 셈입니다.


마귀가 던진 미끼를 덥석 문 겁니다.


목사들이 마귀의 종이 되어서 미끼를 던진거예요.


왜? 그런가요.


천국을 자기 노력으로 가고자 하기 때문이지요.


 


인간 쪽에서 뭔가 이루어 보겠다고 하면 이미 게임을 끝났어요.


천국을 자기 노력으로 가고자 애쓰다 망한 자들이 유대인들이에요.


유대인들은 자기들 열심으로 천국에 가고자 했어요.


평생 종교생활 하다가 지옥으로 간 겁니다.


 


사도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깨달은 것은 천국엔 인간의 노력으로 가는 곳이 아니란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지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보니 인간이 하나님 말씀을 지켜서 가는게 아니고 예수를 믿어야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예수 믿는 것조차도 예수님이 자신을 다메섹에서 찾아와서 믿게 해 주셨듯이 하나님이 믿게 해 주셔야지 만 된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니 신앙생활 자체가 모두 하나님의 은혜인 겁니다.


신앙생활이 인간 쪽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러니 다메섹 이전과 이후의 바울에 신앙은 완전히 바뀌었어요.


다메섹 이전엔 자기가 천국을 좇아갔는데 다메섹 이후엔 하나님 손에 질질 끌려갔어요.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열심과 정성을 다해서 자기가 하나님 말씀을 지키고 살았어요.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난 후엔 자기가 뭘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는 그 약속을 믿고 살았어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지요.


그러자 제자들이 그럼 누가 천국에 간단 말입니까? 항의성 질문을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할 수 있다고 하지요.


 


이는 천국 가고 못 가고는 인간 쪽에서 방법이 없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보내 주면 가는 것이고 안 보내 주면 못 간다는 말입니다.


아주 간단하지요.


하나님이 넣어주면 싫어도 가는 것이고, 하나님이 안 넣어주면 가고 싶어도 못갑니다.


방법이 없어요.


 


이걸 안다면 인간 쪽에서 천국에 가고 못가고의 싸움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말지요.


하나님이 넣어 주고 안 넣어주고 결정 한다고 했으니 인간 쪽에서 할 일이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 천국가고 지옥가고 하는 것은 우리가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에요.


 


믿음을 받으면 이런 문제는 신경이 안 써져요.


이런 문제로 고민한다는 것은 믿음을 못 받았고 예수 밖에 있다는 말이에요.


예수 밖에 있으니 예수 안으로 들어가고자 온갖 노력을 하는 겁니다.


예수 안은 천국이고 예수 밖은 세상(지옥)이에요.


 


이미 천국에 들어와 있는 사람은 천국에 가야하는데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요.


천국이 주는 기쁨으로 살아가요.


그러니 이미 천국에 들어온 성도는 오늘 본문과 같은 말씀들을 들어도 두렵지가 않은 겁니다.


이미 안식의 세계에 들어와서 이긴 게임의 비디오를 보고 있는 겁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지금 구약 이스라엘을 비디오로 틀어서 시청각교제로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가요?


율법으로 의로워 지려고 하는 자들에게 말하는 거예요.


 


히브리서가 왜? 써 졌다고 했습니까?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자들을 위하여서라고 했지요.


예수도 믿고 율법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 자들을 위해서 기록했다고 했지요.


 


거짓 종들이 옆에서 자꾸만 미혹을 하고 공갈을 치니 마음이 흔들려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자꾸만 자기들이 뭘 해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율법 신앙으로 돌아가서 자기 힘으로 천국에 가고자 한단 말입니다.


 


이걸 알고 바울이 자기 힘으로 천국에 가려고 하다가 망한 구약 이스라엘을 예표로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구약에 광야에서 망한 놈들의 비디오를 틀어 주면서 봐라!


저 놈들이 왜? 가나안에 못 들어갔는지 똑똑히 보라고 하는 겁니다.


 


알다시피 성경 속에는 신앙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들의 삶이 기록되어 있어요.


오늘 본문식으로 말하면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과 들어가지 못한 사람으로 나타나 있어요.


 


우리는 성공한 사람은 어떻게 성공하였으며, 실패한 사람은 왜? 실패하였는가를 알아야 해요.


사도 바울은 구약 이스라엘을 우리의 거울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이 왜? 광야에서 실패 하였는가를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구약 이스라엘에게 구원이란? 애굽에서 나와 약속에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 이스라엘에게 있어 성공한 신앙은 애굽을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며, 실패란? 광야에서 멸망 받은 것이에요.


 


가나안 땅을 일컬어 오늘 분문에선 안식의 세계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안식의 세계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 자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누군가 보니 전부 애굽에서 탈출해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모두들 여호와를 찬양하며 감사했던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의 기적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던 사람들이에요.


 


여기서 우리는 언뜻 이상한 생각이 들지요.


분명히 출애굽 할 때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죽음이 재앙으로부터 벗어난 자들이잖아요.


홍해바다에서도 살아난 자들이잖아요.


우리 생각엔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홍해바다를 건너왔으면 다 구원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느닷없이 광야에서 믿지 않아서 다 멸망을 당하였다고 말하고 있으니 모순으로 들리는 겁니다.


 


히브리서를 쓴 사람이 누구다 라고 딱 말하고 있진 않지만, 사도 바울이 기록하였다고 하는 데에는 반대하지 않아요.


저도 히브리서 저자는 사도바울이라고 봐요.


그렇다면 복음에 정통한 사도바울이 이런 말을 할 때는 다 이유가 있을 것 아닙니까?


분명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잖아요.


 


오늘 본문과 동일한 내용이 고린도전서에도 있어요.


한번 볼까요.


 


고전 10:1-12=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바울은 지금 고린도 교회 안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교만한 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너희들 중에 건방을 떠는 놈들이 있는데 조심하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건방 떨다가 망한 놈들을 참고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거예요.


 


너희들 생각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다 구원받았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란 겁니다.


광야에서 멸망 받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은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의 특징이 바로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는 겁니다.


자기 마음대로 산 증거가 우상숭배하고 간음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을 시험한 거예요.


우상숭배하고 간음하고 원망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모두가 육신의 소욕대로 살았다는 겁니다.


누구의 지시를 받지 않고 자기가 왕 노릇하고 살았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지배하에 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구약 이스라엘 전부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다수(多數)라고 증거하고 있는 겁니다.


다수(多數)란? 많은 사람이란 말입니다.


 


하지만 그 중엔 다수(多數)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 숫자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몽땅 그렇지가 않고 얼마만이라도 그들과 다른 자들이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 속에 두 부류가 섞여 있었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구약의 사건을 지금 현재화 시켜서 말하고 있어요.


지금도 그렇다는 겁니다.


항상 어느 시대이든지 그런 일이 있어 왔다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그렇다면 과연 누가 하나님의 안식에 참예하느냐를 알아야지요.


제자들의 말대로 그럼 누가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누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느냐를 말해주고 있어요.


 


히 3:7-19=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년 동안에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가로되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하셨다 하였으니 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먼저 그의 음성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의 음성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말합니다.


이를 14절에선 “시작할 때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하게 붙잡으라” 고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와 함께 안식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고 합니다.


 


자 정리합니다.


가나안엔 누가 들어가느냐?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자가 들어간다는 겁니다.


그럼 가나안에 못 들어간 자는 하나님 약속을 붙잡지 않고 다른 것을 붙잡았단 말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하나님의 안식의 세계로 들어간 자와 못 들어간 자의 차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은 자는 들어가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지 않은 자는 못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가나안은 누가 들어가느냐?


하나님의 약속으로 들어가는 곳이란 것이 드러났어요.


 


잘 들으세요.


지금 이스라엘이 어떻게 출애굽 하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 때문이지요.


 


출애굽기 2장을 봅시다.


 


출 2:24-25=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그 언약을 기억하사 구출한다고 하지요.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언약으로 일을 하신다는 말이 되지요.


인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보고 일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에게 있어야 할 것은 뭡니까?


언약이지요.


누구 언약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언약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받은 언약이란 말입니다.


언약은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일방적으로 약속을 하셨어요.


 


내가 정한 약속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라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내가 열심히 해서 천국 갈게요! 가 아니고, 하나님이 너 천국에 넣어 줄게! 라는 약속을 받아야 해요.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의 의지이고 자존심이에요.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렇게 되고야 말게 하세요.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을 받으면 이미 확정적인 되는 겁니다.


이미 확정이 되었단 말입니다.


실패가 없으니 이미 끝난 거지요.


이게 믿음이 오면 믿어져요.


그래서 믿음을 받은 성도는 이미 이긴 자로서 세상을 사는 겁니다.


 


그럼 하나님이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향속을 하셨는지 살펴봅시다.


 


창세기 15장입니다.


 


창 15:13-1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찌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합니다.


네 자손이 이방에 객으로 사백 년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냥 사는게 아니고 종노릇하며 산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짠 각본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사백년 동안 애굽에서 개고생을 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다가 하나님이 아브라함 후손을 괴롭게 한 나라는 박살을 내고 자기 백성들을 끄집어낸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시나리오대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살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강퍅한 바로 왕도 세우고 독한 놈들을 붙여 놓은 겁니다.


하나님의 각본대로 아브라함 후손들은 애굽에서 사백년 동안 개고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각본대로 사대 만에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어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 때문이지요.


그럼 가나안에 들어오는 사람에겐 뭐가 담겨져 있어야 합니까?


하나님 약속이지요.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져 있지 않으면 그 사람은 아브라함 후손이 아니에요.


진짜 아브라함 후손은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 약속이 담겨져 있는 자예요.


하나님 약속이 담겨져 있는 사람은 뭘 붙잡겠어요.


하나님 약속이지요.


 


그럼 누가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져 있는지 확인하여야 할 것 아닙니까?


누가 하나님 약속만 바라보고 따라 나온 사람인지 확인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광야는 어떤 곳이냐 하면 누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자인지 구별하는 장소가 되요.


 


광야란? 이스라엘의 믿음을 시험하는 곳이에요.


어느 놈이 진짜 아브라함의 약속을 붙잡는 자인지 찾아내는 장소란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걸러내는 곳이란 말입니다.


 


광야에 집어넣고 진짜와 가짜를 걸러 내는 겁니다.


천국백성과 지옥백성을 갈라내는 것입니다.


 


제가 즐겨 쓰는 말인데!


여러분! 믿음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만 판명이 나요.


좋은 환경 속에선 다 잘 믿는다고 해요.


 


예수 믿고 복 받고 잘 산다면 다 예수 잘 믿는다고 해요.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살면 누구라도 예수를 믿어요.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지 않아도 인간들 스스로가 다 믿어요.


 


그런데 예수 믿고 망한다고 하면 예수 믿고 덕 좀 보려고 한 자들은 다 떠나가요.


다른 말로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을 받지 않는 자들은 다 떠나가요.


왜냐하면! 그들을 붙잡아 주는게 없기 때문이에요.


 


처음엔 십자가! 십자가 해요.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핫바지 방구 새듯이 다 빠져 나가요.


계속해서 물갈이를 해 왔어요.


 


왜? 그런가 하면!


십자가를 목회에 이용하고자 하기 때문이에요.


한국교회 꼬라지를 보니 너무 한 겁니다.


대형교회 목사들을 보니 완전히 무당인 겁니다.


 


자기는 신선하게 해서 저 무당 같은 놈들과 다른 교회를 한번 해 보고 싶은 겁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붙잡은 겁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에 자기가 죽어야 하는데 그건 싫어요.


십자가를 목회에 이용 하려다가 자기가 물리게 생겼어요.


교인들이 말을 안 들어 쳐 먹고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버리고 떠나는 겁니다.


 


떠난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처음엔 십자가! 십자가 하면서 이단이라고 욕하던 기성교회 목사들하고 똑 같은 목회를 하고 있어요.


교회를 포기하지 못해요.


어떻게 하든지 교회는 붙잡아야 먹고 살 수 있으니 교묘하게 십자가를 이용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십자가를 이용하면 이용이 되는 줄 알아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이에요.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이용하고자 전하는 그것으로 자기 백성을 빼내는 줄 몰라요.


 


암튼 하나님께로 나지 않는 사람은 다 떠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믿음을 선물로 받은 성도는 망함 속에서도 예수를 못 떠나요.


죽는 줄 알면서도 못 떠나요.


왜? 그런 줄 아세요.


그 속에 믿음이 성도를 붙잡고 있기 때문이에요.


 


믿음이 성도를 붙잡고 있기 때문에 죽는 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가고야 말아요.


이 사람들이 바로 히브리서 11장에 나온 사람들이고 신약에선 12 제자들이에요.


하나님이 그들을 꽉 붙잡고 있기 때문에 도망을 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니 지금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은 광야에 집어넣고 누가 하나님의 약속만 붙잡고 따라 나온 자인지 아닌지를 도리깨질로 걸러 내는 겁니다.


세례요한 말대로 예수님이 손에 키를 들고 키질을 하는 겁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는 겁니다.


 


그러니 가나안을 정탐하고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 약속을 붙잡고 들어가자고 하는 반면에 나머지 10지파 족장들은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겁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하나님 약속을 붙잡았고 나머지는 자기 능력을 붙잡은 겁니다.


자기들 힘으로 가나안 족속들과 싸우지 못하겠으니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한 겁니다.


만약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들어갔지요.


그러니 10지파는 자기들 능력을 믿고 있는 겁니다.


 


여호수아 갈렙은 믿음으로 그 땅을 보았고, 10지파 족장들은 보이는 환경을 본 겁니다.


자기들 꼬라지와 가나안 원주민과 비교하니 도무지 이길 자신이 없으니 여호수아 갈렙을 핍박하고 모세를 원망하고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데모를 한 겁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약속이 담겨져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구분이 되는 겁니다.


진짜 아브라함의 약속의 자녀와 혈통적 자녀와 구분이 난 거예요.


 


이걸 신약에서 사도바울은 표면적 이스라엘과 이면적 이스라엘이라고 한 겁니다.


 


교회란? 광야와 같아요.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추수하고 있는 거예요.


누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있는 자인지 아닌 자인지를 갈라내고 있는 겁니다.


 


이 시대 하나님 약속이 뭡니까?


예수님의 피이지요.


새 언약이에요.


 


오늘 본문이 뭐라고 합니까?


 


히 3:7-8=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나님의 음성(音聲)을 들으라고 하지요.


하나님의 음성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겁니다.


 


그런데 오늘날 너희가 그 음성을 듣거든 격동하지 말라고 하지요.


과거의 사건을 오늘날이라고 하여 현재화 시키고 있지요.


이는 지금도 영적인 의미에서는 광야 시대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럼 신약에서 하나님이 붙잡으라는 것이 뭡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뭐에요.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이잖아요.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거잖아요.


율법 외에 다른 의(義)를 붙잡으라고 하잖아요.


율법 외에 다른 의(義)가 바로 예수님의 피흘리심에 있다고 하잖아요.


 


구약에선 아브라함과 한 약속을 붙잡고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고, 지금은 예수님과 한 약속을 붙잡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뭐냐?


새 언약을 믿는 거예요.


새 언약이 뭡니까?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된다는 거잖아요.


율법 외에 다른 의(義)잖아요.


 


그런데 이 시댄 율법 외에 다른 의(義)를 붙잡지 않고, 율법에 의(義)를 붙잡고 있어요.


이름 하여 성화에요.


 


예수님 피를 믿으라고 하면 하찮게 보아요.


아주 기분 나쁘게 봐요.


아직도 그 예수 피 이야기 하느냐? 라고 조롱해요.


 


예수를 믿었으면 이젠 반듯한 인간이 되어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지 않느냐 라고 해요.


이게 저주 받을 짓인지 몰라요.


자기 꼬라지 보다가 망한 놈들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하나님 약속을 붙잡지 않고 보이는 것을 의지하다가 광야에서 몰살당한 자들이에요.


 


여러분!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열 번이나 시험을 했다고 하지요.


 


민 14:22-23= “나의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나의 이적을 보고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한 그 사람들은 23 내가 그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하나라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을 열 번이나 시험하다가 망한 족속이 누구입니까?


애굽에 바로 왕이잖아요.


이스라엘은 바로가 하나님께 열 번이나 반항하다가 망한 것을 두 분으로 똑똑히 봤어요.


그런데 지금 그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께 열 번을 반항하고 있어요.


그럼 광야에서 하나님을 열 번이나 시험하다가 망한 이스라엘은 누구와 같단 말입니까?


애굽 족속과 같단 말이지요.


맞아요.


 


비록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 후손이 맞지만 영적으로는 바로와 같은 마귀 새끼들이에요.


우리 생각엔 바로가 그렇게 하나님께 반항하다가 망하는 것을 보았으면 자기들을 그런 짓 하지 말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죄라는 놈은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하게 해요.


이것 먹으면 죽는데 하고서도 그것을 먹어요.


죄를 이길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죄인은 그 길로 가면 죽는다고 가르쳐 주어도 그 길을 가고야 마는 종자들인 겁니다.


성화주의자들에게 그건 독약이라고 해도 기어코 먹어요.


 


이 시대 애굽인이 누구냐?


새 언약을 안 믿는 자에요.


예수님의 피로 만족하지 않고 자꾸만 뭔가 보태려고 하는 자들이에요.


 


하나님이 누구에게 불벼락을 내리는 줄 아세요.


예수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는 자들이에요.


 


그래서 바울은 예수의 피를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는 겁니다.


 


히 10:26-32=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에 죄를 범하면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다고 하지요.


오직 맹렬한 불만 기다린다고 하지요.


 


진리의 지식이란? 다름 아닌 아들의 피로 거룩해 진다는 겁니다.


예수 믿어서 가나안 간다는 것을 아는 거예요.


 


그럼에도 <예수 믿기 + 성화하기 = 온전한 구원> 이라는 공식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는 용서치 않는다고 하지요.


언약의 피를 부정하게 여기는 것이 뭡니까?


스스로 의로워 지려는 겁니다.


말씀대로 살아서 거룩해져야 한다고 하는 성화주의자들이에요.


 


사도들이 누구와 싸웠습니까?


바울이 누구와 싸웠습니까?


율법주의자들과 싸웠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는 자들과 싸웠잖아요.


그들 손에 죽임 당하였잖아요.


 


예수님이 누구 손에 죽었습니까?


율법주의자들에게 죽었지요.


율법엔 의(義)가 없다고 하다가 죽었잖아요.


예수님의 피로서만 의로워진다는 말을 하다가 죽었잖아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두 증인들이 나와요.


그런데 이들이 죽은 장소를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고 예수님이 죽은 곳이라고도 해요.


이는 영적으로 보면 지금이나 예수님 시대나 출애굽 때나 동일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어느 시대이고 예수님의 시대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 놓는 겁니다.


 


마귀가 소돔 시대에도 있었고, 애굽 시대에도 있었고, 예수님 초림 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어요.


어느 시대이고 싸우는 맥(脈)은 같아요.


어느 시대이고 마귀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자들을 공격했어요.


 


예수님 당시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는 자들은 사도들이었어요.


그럼 예수님과 사도들을 공격한 자들은 마귀에게 속하였음이 자명하지요.


그럼 예수님과 제자들을 공격한 놈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의로워지자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이지요.


 


그럼 이 시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의로워지자고 하는 율법주의자들이 누구입니까?


말씀대로 살아 거룩해 지라고 가르치는 자들이 누구입니까?


성화주의자들이지요.


성화주의자들이 누구를 공격합니까?


저처럼 예수님의 피를 증거하는 사람들을 공격하잖아요.


 


그럼 예수의 피만 증거하는 자들을 공격하는 성화론자들은 누구에게 속한 자입니까?


마귀에게 속한 자이지요.


분명하잖아요.


이건 정해진 수순이에요.


하나님이 이런 구도를 만들어 놓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교회 안에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강퍅한 마음으로 대드는 놈들이 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라고 하면 신경질을 내는 놈들이 있어요.


바로 성화주의자들이에요.


 


아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습니다! 라고 하면! 아멘! 할렐루야!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아요.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내요.


 


그럼 성도는 개판으로 살아도 되느냐! 라고 하면서 바락바락 덤벼요.


아니 누가 성도는 개판으로 살아도 된다고 했나요.


인간에게서 하나님이 바라는 의(義)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하나님이 바라는 의(義)가 나오지도 않는 것을 왜? 신앙이라고 가르칩니까?


제가 그걸 나무라는 거예요.


왜? 신앙도 아닌 것을 신앙이라고 가르치느냐에요.


 


구원은 성도의 삶과 상관없이 예수님의 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그럼 예수님의 피로서만 의롭게 됩니다! 라고 하는데 그게 그렇게 짜증낼 일입니까?


 


믿음도 아닌 것을 믿음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그 속에 뭔가 꼼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한마디로 교인들 돈 뜯어내고 충성과 열심을 뜯어내고자 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목사 대접 받고 싶은 겁니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왜? 교인들이 교회 충성하고 목사 대접하는 것을 막느냐 에요.


성화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야 목사 대접도 하고, 속 썩히지 않고 목사 말도 잘 듣고, 교회에도 충성하고, 헌금도 잘 할 것 아니냐 에요.


예수님이 홀로 다 이루셨으니 우리가 할 일이 없다고 하면 누가 교회에 봉사하고 충성하고 헌금하겠느냐 에요.


 


이 사람들은 하나님이 공급하는 힘을 몰라요.


안 믿어요.


하나님의 은혜가 성도를 강권하신다는 것을 몰라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께서 알아서 다 간섭한다는 것을 믿지 않으니 목사가 간섭하는 겁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증서를 다 도말 했어요.


그러니 이젠 뭘 어떻게 하여야 된다는 식의 신앙은 없습니다.


예수님의 대속하심에 감사하며 살 면 됩니다! 라고 하는데 그게 어찌 욕먹을 일입니까?


 


그런데 성화주의자들은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해요.


당신들처럼 가르치면 교인들이 방종하고 방탕하게 산다는 겁니다.


끝까지 인간의 행함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겁니다.


이 사람들은 교인들을 반듯한 사람으로 만들어서 세상에 자랑하고 싶은 겁니다.


반듯하게 사는 것이 의(義)라고 여기는 것을 악이라고 고발을 해 주어야 할 목사들이 도리어 그들과 유유상종이 되어서 교인들을 반듯하게 살라고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이 시대 죄의 유혹이란 무엇인가요?


오늘 본문 13절에서 그러지요.


죄의 유혹에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하잖아요.


 


13절=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죄란? 인간의 윤리도덕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것이에요.


강팍하다는 것은 말을 듣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시대 하나님 약속이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잖아요.


 


여러분! 여호수아와 갈렙이 대단한 인격자라고 상상하지 마세요.


그들은 단지 하나님 약속을 붙잡았을 뿐이에요.


신앙이란? 내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것을 붙잡는 겁니다.


내 것을 많이 비울수록 예수님에 것이 채워져요.


 


신앙생활을 고매한 인격을 수양하는 것이 아니에요.


날마다 자기 안에 죄를 토해내고 그럼에도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용서 받고 산다는 것이 고맙고 감사해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좋은 인격이나 교양은 신앙이 아니에요.


죄인에게서는 하나님이 보시기엔 좋은 것이란 없어요.


물론 인간들 사이에선 좋은 것이에요.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의 관계이지 인간과의 관계가 아니에요.


인간과의 관계라면 고매한 인격이나 교양이 필요해요.


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죄 문제에요.


인격이나 교양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선 인간 자체가 죄인인데 무슨 고매한 인격이나 교양이 있겠어요.


 


그러니 하나님 앞에선 앞으로 잘 할게요!


열심히 할게요!


더 나아지겠습니다! 라는 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사람의 행동은 환경에 영향을 받아요.


사흘 굶어 담을 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은 배고픔이 사람을 도적질 하게 만든다는 말이에요.


아무리 교회에 충성하고 싶어도 몸 아파 보세요.


다 귀찮아요.


하고 싶어도 못해요.


 


인간에겐 자기 몸 이상 더 중요한 게 없어요.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이 다 배 부르고 포만감이 있어야 뭘 해도 하게 되어 있어요.


당장 땟거리가 없는 사람에게 헌금하라고 하면 못해요.


하고 싶어도 못해요.


싫어서가 아니라 여건이 허락지 않기 때문이에요.


 


산해진미 먹어 가면서 아쉬운 것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 나올 수 있어요.


하지만 광야에서 먹을 것 마실 것 없는 환경에선 감사가 나오지 않아요.


원망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인간은 환경 따라 변화무쌍하게 조석으로 변해요.


몸뚱아리는 컨디션에 따라서 희비가 춤을 춰요.


지금은 주를 위해서 죽겠다고 큰소리치지만 내일은 어떻게 바뀔지 몰라요.


지금은 성화한다고 깝죽대지만 내일을 하나님을 죽이겠다고 돌을 던질지 아무도 몰라요.


 


한국교회에서 성자라고 하는 한OO 목사가 치매에 걸려서 수발드는 권사님이 찬송가를 틀고 예수 믿으라고 하니 이년아 아직도 예수 믿냐 라고 하였다는 일화가 있어요.


찬송가는 지긋지긋하니 유행가를 틀으라고 했다고 해요.


 


대구 OO교회 원로 목사인 김OO 목사가 미국에서 축도를 하라고 하니 홍도야 울지 말라 오빠가 있다 라는 유행가를 불렀다고 해요.


 


맞는 말인지 확실친 않지만 그런 말이 들려요.


사실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이 이렇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이들이 예수를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는 전 관심이 없어요.


하지만 그들에 남기고간 흔적들을 보면 짐작은 할 수가 있어요.


 


이 사람들은 모두가 한국교회에서 자랑하던 사람들이에요.


한국교회를 한 시대 호령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치매에 걸리니 예수가 누구냐 라고 욕을 해요.


이겐 인간이에요.


 


인간의 몸에선 의(義)가 없어요.


의(義)가 나오지 않아요.


누르면 죄만 나와요.


죄를 이길 수가 없어요.


치매 하나에 왔다 갔다 하는 인간의 신앙을 어찌 믿음이라고 붙잡고 있는 단 말입니까?


그 꼴란 성화신앙이 얼마나 가겠다고 자랑하느냔 말입니다.


 


그러니 시절을 쫓아서 카멜레온처럼 변화하는 육신을 의지하지 마시고 변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선 의(義)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대신 죽어 주셨잖아요.


성도는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에요.


이 사실을 알기 때문에 평생 동안 예수님의 피만 붙잡고 사는 겁니다.


예수님 피만 자랑하고 사는 겁니다.


예수님 피를 자랑하라고 구원을 했는데 왜? 예수님 피는 저 구석으로 밀어내고 자기 인격을 다듬고 교양을 쌓아 가는 성화를 자랑하느냔 말입니다.


그럴 믿음이라고 붙잡고 있느냔 말이에요.


 


도대체 천국에 뭘 들고 가려고 합니까?


그 잘난 열심과 충성심입니까?


개과천선(改過遷善)이 된 고매한 인품입니까?


 


개가 물어가지도 않을 그 인격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예수의 피를 밀어내느냔 말입니다.


누가 살모사(殺母蛇) 새끼가 아니랄까봐서 자기를 낳아준 예수님의 피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느냔 말입니다.


우리들의 고매한 자질이 예수님의 피보다 더 가치가 있습니까?


정녕 그러합니까?


속엔 온갖 탐욕이 가득하면서도 겉으론 평토장한 무덤처럼 화려하게 꾸민다고 하나님이 속을 것 같습니까?


 


어찌 눈을 지으신 자가 보지 못하겠으며,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못하겠으며,


마음을 지으신 자가 그 속을 모르겠습니까?


하나님이 하늘에서 웃으십니다.


스스로 속는다고 해서 하나님도 속는다고 착각하지 마세요.


한낱 미물 같은 제 눈에도 여러분의 신앙이 훤히 보이는데 어찌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단 말입니까?


 


성도라고 한다면 말씀 앞에 솔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의 허물을 나무라지 않아요.


이미 허물진 자를 선택했어요.


원래 허물이 있는 자이기에 예수님의 피로 의롭다 여기심을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허물이 있음에도 감추고자 하는 것을 악하다고 책망하는 겁니다.


하나님 앞에선 수치를 가리는 것이 수치에요.


수치를 다 드러내는 것이 기쁨이고 영광이에요.


 


말씀 앞에 발가벗김바 되세요.


더러운 것이 다 드러나게 하세요.


스스로 속이지 마세요.


우린 너나 나나 거기서 거기에요.


말씀을 지킨 놈이나 안 지킨 놈이나 도낀 개낀이에요.


성화한 놈이나 안한 놈이나 그 놈이 그놈이에요.


 


제발 예수님의 피를 우습게 여기지 마세요.


그 피를 앞세우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안식의 세계로 들어갈 수가 있어요.


예수님의 피를 놓치지 마세요.


그 피가 곧 저와 여러분의 생명입니다.


 


성도가 자랑할 것은 오로지 예수님의 피 뿐입니다.


여출일구하게 내어 놓아야 하는 것이 예수님의 피에요.


그 피가 우리를 모든 죄로부터 깨끗케 해주는 능력인 겁니다.


 


이 변하지 않는 예수님의 피를 붙잡고 안식의 세계로 들어가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희들에게 주신 것은 예수님의 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를 견고하게 붙잡도록 늘 간섭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피가 생명이고, 예수님의 피가 의이고, 예수님의 피가 안식이라는 것을 굳게 붙잡고 믿고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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