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완한 식민지 근대화론(최종 편)
카테고리 : 밝은 세상을 위해 | 조회수 : 5912020-07-05 오후 9:48:00

내가 보완한 식민지 근대화론(최종 편)

 

강민호

 

나는 지금까지 내가 보완한 식민지 근대화론이란 제목으로 일곱 편의 글을 썼다. 일곱 편의 글들을 쓰면서 역사가들이 이승만학당 사람들의 소설 같은 역사 가설들에 대한 반박하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마라이란 말처럼 역사가들이 이승만학당 사람들의 주장에 대한 반박하면 자신들의 권위만 깔아먹은 일이기 때문이다. 반박만할 논리와 근거가 있어야 반박해야 할 의욕도 생기고 자신들의 학술발전도를 시킬 수 있어서 권위도 높일 수 있다.

 

이승만학당 사람들의 역사주장처럼 소설 같은 주장은 반박해야 할 의욕도 생기지 않고 자신들의 학술발전도 시킬 수 없다. 오히려 역사가들이 이승만학당 사람들의 역사주장을 반박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역사상식도 없는 이승만학당 사람들과 같은 수준으로 보일까 걱정되어서 반박하지 않은 것이다.

 

차별적인 생각이라서 글로 옮기는 조심스럽지만 이야기 상대가 해주야 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야기 상대가 해주지 말아야 사람들이 있다. 이승만학당 사람들은 후자에 해당된다. 이 때문에 내기 이승만학당의 사람들이 하는 역사주장이 논리도 없고 증거도 없는 주장이라고 글 쓰는 내가 그들과 같은 사람으로 보일까 걱정된다.

 

생각해보면 내가 만약에 장애인도 아니고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면, 누구보다도 이승만학당 사람들의 역사주장을 지지했을 것이다. 오프라인대학 제학시절 장애학생복지연합회에서 자원봉사학생들을 관리 할 때 장애학생이 시험 볼 준비가 안 되었으면 비장애학생들에게 대필해주지 말고 그대로 나오라고 해서, 비장애학생들로부터도 비판받았던 나를 생각하면 틀림없이 일본의 식민지 되었던 것이 우리나라가 근대화 되는데 극정적으로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내가 장애인이 되고 역사에 대한 관심이 많다보니 일재가 1910년에, 조선의무교육령을 제정했지만 20년까지 전국에서 개교된 소학교(초등학교)30개 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또 회사령을 제정해서 일본계 회사들이 조선계 회사들보다 두 배 세배가 되게 하고 농부들도 먹을 것이 없이 농산물들을 일본으로 가져갈 것도 알았다. 그 때문에 일재말기인 1940년대가 되면 60만의 농민들이 간도로 이주하였다는 것도 알았다. 일본이 조선 소녀들을 종군위안부로 끌고 갔던 것이 부인 및 아동 매매금지 국제협약, 접촉되지 않은 식민지 국민들을 상대로 했던 범죄이었다는 것까지 알아서 이승만학당 사람들이 우리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무리이라고 생각한다.

 

이승만학당 사람들의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들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하는 이승만대통령의 뜻과 반대되는 주장도 하고 있다. 나는 이승만대통령을 무늬만 독립운가 이고 조선의 선조처럼 이기주의고 능력이 없는 지도자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이승만대통령이지만 잘한 일도 있었다.

 

일본이 항복 할 때 미국에 독도가 우리영토이란 것을 끝까지 관찰시키고, 대마도를 우리영토로 편입시켜주지 않은 것에 강력히 향의 했다. 또한 52년에 일본이 도독을 침입하자 한국전쟁 와중에도 군대를 파견해서 1000여명을 나포하고 40명을 사살하면서 독도를 지켜냈다. 미국이 북한과 중국과 함께 휴전을 하려고  하자 전시작전권을 되찾아서 전쟁을 지속해서 통일하려고 시도했다. 또한 미국의 강력한 압박해도 진정한 사과와 엄청난 배상금을 주지 않아서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 때문에 4.1.9혁명 때 미국이 이승만대통령을 보호해주지 않았다는 말도 있다.

 

그런 이승만대통령을 정신적 스승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독도를 반일 종족주의의 토템적인 상징물이라고 주장 할 수 없다. 일본과 굴종적인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주장을 더더욱 할 수 없다.

 

일본의 자본으로 연구 활동을 해서 그런 주장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들은 원래 공산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공산화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공산화가 되지 않았고 이승만학당 사람들은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 탓에 전향을 하는데 그것이 지나쳐서 초기 자본주의 사상을 가지고 사람들이 되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역사주장이 초기 자본주의시대에 열강들이 식민지들응 함리화시킬 때 펼던 진화론적인 주장이다. 초기 자본주의는 이미 100년여 전에 세계대공황으로 실패한 사상이다. 측 이들은 살아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에 공산주의처럼 실패한 초기 자본주의시대에 사회진화론을 기초로 한 창작한 역사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내용 
전광훈목사는 누구인가?
위안부할머니들에게 또 한 번 죄 짓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