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만 거칠게 하는 가족들
카테고리 : 나의 이야기 | 조회수 : 1392017-03-03 오후 8:31:00

말만 거칠게 하는 가족들 
                                    강민호

 

우리가족은 이야기할 때는 거친 말을 많이 사용한다. 내가 가족들과 정답게 이야기했던 기억보다 이야기를 한다가 다툰 기억이 많은 것도 우리가족의 거친 말버릇 때문이다.

 

가끔 TV에 나오는 제주도 말은 정감 있게 들리지만 실제 제주도말은 어감이 강해서 무뚝뚝하게 말하면 따지는 느낌을 준다. 이런 제주도 말을 목소리가 크고 성격도 급하며 속마음을 표현 못하는 우리가족이 사용하는 과정에서 다툼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나 역시도 과거에는 가족들과 이야기할 때는 무뚝뚝하고 어감이 강한 제주도 말을 많이 사용했다. 남들에게 이야기할 때는 표준말을 쓰거나 제주말도 정담이 느껴지게 했지만. 가족들에게 말할 때는 잘못 사용하면 따지듯한 제주말로 이야기했다. 선물을 받을 때조차도 남들에게는 상냥하고 공손하게 고맙다고 말했지만, 가족들에게 선물을 받을 때는 돈을 낭비하면서 왜 사왔냐고 면박을 주고 따지듯이 말하는 것이 일쑤였다. 필시 나의 그 말은 나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가족들의 마음을 무시하는 말로 들려서 오만 정이 떨어지게 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선물을 준비한 가족들의 마음을 무시해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은 아니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나를 버지지 않고 키우고 있는 것도 고마운데 때때로 선물을 안해주도 된다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서 하는 말이다. 내가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거친 말을 하는 것은 우리 할머니한테서 배웠다. 우리 할머니께서는 그 누구보다 여리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다보면 저절로 화가 났고 기분 상하게 말씀하신다.

 

나와 동생들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할머니와 같이 살았다. 그때 할머니께서는 엄마도 없는 것들이 기도 조금 죽어야 한다고 자주 야단을 치셨다. 나와 동생은 그 말씀을 몹시 듣기 싫어했다. 기분 상하게 하는 말씀뿐만 아니라 결손가정의 자식이란 사실을 일깨워 주는 말씀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머리가 굵어진 이후에는 할머니께서 그런 말씀을 하시면 어머니가 없어도 씩씩하게 살아가는 손자들에게 칭찬은 못할망정 뭐가 못마땅해서 그 말씀을 하시느냐고 할머니와 다투기도 했다.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못마땅해서 고런 말씀을 하셨던 것이 아니라 너무 씩씩하게 생활하는 모습이 자칫하면 남들에게 버릇없게 보일까 봐 노파심에서 하신 말씀이셨다. 우리가 남들에게서 어미 없이 자라서 버르장머리가 없다는 말을 듣고 상처받지 않게 행동하라는 따뜻한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우리에게만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거친 말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에게도, 고모들에게도, 작은아버지에게도 마찬가지셨다. 할머니께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게 된 것은 생활환경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제주도 말로 바람코지라고 일으켜지는 바람의 길목에 있는 바닷가 마을에서 험한 일을 하며 생활해나가다 보니까 말이 더욱 거치러졌을 것이다. 내 고향 사람들은 약간의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말들이 아주 거칠다, 사람, 사람들은 알고 보면 따뜻하고 순박한 사람들인데 일명 난드르라고 부르는 바람과 파도가 많은 마을에서 힘든 농사일과 위험한 뱃일을 하는데 필요한 빠른 의사소통을 한다보니 거친 말이 입에 붙었다.

 

주로 선원들의 생명과 조업하는데 큰 영향을 미치는 기관장으로 많이 일하셨던 우리아버지께서는 말이 아주 거칠었다. 우리나 고모들. 심지여 할머니와 이야기하다가도 툭하면 쌍스런 말이나 욕하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나는 어릴 때는 그런 아버지의 말씀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다. 한 번은 뇌성마비를 가지고 있는 나의 치료에 대해서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께서 그만큼 치료해도 소용없으니 그만두라고 하시고 병신새끼로 살다가 죽게 하라고 했다. 내게도 쓸모없는 새끼 빨리 죽어버리라고 말씀하셨다. 막상 내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밥도 먹지 않고 울자 아버지께서는 못된 말버릇으로 실수했다고 하시며 사과했다.

 

사실 아버지도 말만 거칠게 할 뿐 마음은 아주 여린 분이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여린 마음을 표현 못하는 거친 아버지께서는 평생 외롭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다. 자식들과도 정을 나누지 못하고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막내동생과 이야기한 아버지의 전 날 이야기를 생각한다.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막내동생만 찾아서 막내동생이 고향집에 갔는데 아버지께서는 왜 왔어?”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또 막내동생이 같이 병원에 가자고 하니까 몰라 세끼야.”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나와 막내동생은 왜 왔어?”란 말씀에 보고 싶었는데 왜 이제야 왔느냐는 아버지의 마음과, “몰라 세끼야.”란 말씀에는 '아빠 병원 갈게'라는 의미가 있었다고 이야기 했다. 죽을 때는 달라진다는 말도 통하지 않았던 아버지의 말버릇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해진다.

 

나는 얼마 전부터 가족들에게도 거친 말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가족들과 속마음과 정을 나누면서 살고 싶어서이다.

 

 

20161.

 
댓글내용 
나는 이번 스승의 날에도 배은망덕한 일을 했다.
자네는 더 배고파야 한다.(장복의 추억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