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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로 오시는 그대
카테고리 : 게재 | 조회수 : 17702010-02-07 오후 11:07:00

정중규 시집 [뼈의 아픔, 돌의 울림] 해설 / 햇살로 오시는 그대

 

 

  새천년을 맞이하고도 세상이 시끄럽다. 이십세기의 막바지에 앞다투어 내놓았던 숱한 반성과 다짐과 각오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이 없다. 세상은 오히려 지난 세기보다 더 열렬하게 자기를 내세우고 상대를 깎아 내리려는 사람들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이 시끄러운 난전에 또 한 명의 시인이 자신의 집을 지었다. 시집은 시인이 구축한 온전한 한 채의 집이고 그 집은 자신의 살과 피와 영혼을 깎아 만든 창조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 가치는 세계관의 무늬와 언어를 축조하는 기교에 의해 조금씩 모양을 달리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상대 평가의 대상은 아니다. 그 폭과 너비, 높이와 깊이는 그 무엇에도 비길 수 없고 그 무엇에도 버금가지 않는 절대적인 존재의 집이다. 시인은 이 우주에서 단 하나뿐인 단독자이므로 그에 의해 수공업으로 쓰여진 시는 이미 하나의 독특한 개성이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들이 다 그러할 것이다. 시인은 그것을 발견하고 거기에 걸맞은 각각의 이름을 달아주는 자이다. 

  정중규의 시를 읽으며 시인의 자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거대한 자본의 홍수에 떠밀려가는 우리에게, 신랄하고 화려하고 선정적인 것이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천박한 시간을 질주해 가는 우리에게 시는 과연 무엇인가. 추락과 파멸을 향해 치닫는 저 질주를 시는 과연 멈추게 할 수 있는가. 

  오늘의 질주는 너무 빠르고 거대해서 시는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는 고속도로변에 핀 수수한 들꽃과 같을 것이다. 한 떨기 작은 꽃을 피워 올리기 위해 모진 비바람을 오랫동안 견뎌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앞에 머무는 발길은 많지 않다. 시는 그렇게 쉽게 거들떠보지 않는 자리에 들꽃처럼 혼자 피었다가 혼자 스러질 운명을 타고났다. 

  그러나 그게 뭐 대수랴. 바람이 심심찮게 와서 그 얼굴을 쓰다듬어주고 해와 달이 사랑의 빛을 내리쬐고 있지 않은가. 또 나비와 벌 작은 벌레들이 쉼없이 찾아와 한참을 놀다갈 것이다. 또 간혹은 바삐 가던 발길을 멈춘 눈 맑은 사람들이 꽃의 가슴을 쓰다듬어주고 갈 것이다. 또 가끔은 지루한 정체를 견디지 못해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잠시 저를 예뻐할 것이다. 

  시는 이를테면 그런 작은 들꽃의 쓰임새와 같은 것이다. 바삐 가는 먼길에 지친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시는 현란한 질주의 길을 비켜나서 핀 작은 들꽃과도 같다. 그러므로 그런 시의 생산자인 시인은 빠르고 우람하고 높고 씩씩한 자리에 서 있는 자가 아니다. 느리고 보잘 것 없고 낮고 겸허한 자리에 서 있기를 즐기는 자다.   

      

  온 하늘과 어린 산들을 덮고 있는

  안개구름 속에

  나를 파묻고 싶다


  잿빛 캔버스 위에

  우울한 노래처럼

  구슬피 비가 내리고 있다


  폭풍이 거세게 불며 항시 우는

  메마른 벌판 위에

  홀로 핀 들꽃처럼

  슬픈 두려움이 나를 감싼다


  나는 우주 속의 미아

  녹지 않는 드라이 아이스

                                      - <외로운 슬픔> 중에서


  시인의 외로움은 거듭나기 위한 하나의 통과의례인데 정중규에게도 고독이 주는 슬픔과 방황의 시간들은 나 아닌 타자, 우주 속의 온갖 삼라만상을 받아들이는 좋은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 외로움 속에서 시인은 하늘과 산과 안개구름과 폭풍우와 들꽃들이 각기 자기 자리에서 저에게 주어진 가치를 발휘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질서에 자신을 의탁할 수 있게 된다. 그 질서에 편입되지 못하고 홀로 선 자아는 ‘우주 속의 미아/ 녹지 않는 드라이 아이스‘애 다름 아니다. 그의 시적 갈망은 이를테면 우주의 미아가 아닌 우주의 한 가족이 되고자 하는 것, 녹지 않는 드라이아이스가 아닌 다른 것을 녹이는 부드러운 결정체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고함 소리가 터져나오고

  불길 솟고 장작이 타고 

  그 둘레에 떼지어 모여

  잡스럽고 천박하게 떠들며 놀고 있다


  그래, 개는 똥을 찾고

  참새는 씨알을 찾고

  벌은 꿀을 찾는다

  절망하라! 절망하라!

  배고픈 인간이 되라

  냉정하고 비정한 자가 되라

  모든 게 거짓뿐인 것을

                               -<꿈> 중에서


  ‘나의 눈은 천만번 꿈’을 꾸고 ‘나의 입은 천만번 꿈’을 중얼거리지만 그 성취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고함소리가 터지고 불길과 장작이 타는 잡스럽고 천박한 순간들을 넘어서야 한다. 그 꿈에 빨리 이르기 위해 시인은 절망하라, 절망하라고 자신을 다그친다. 그 절망은 ‘똥을 찾는 개’나 ‘씨알을 찾는 참새’나 ‘꿀을 찾는 벌’처럼 다급하고 간절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 절망은 시련일 테지만 시인에게 있어 절망은 거듭나기 위해 즐겁게 건너야 할 하나의 과정이다. 시인은 평생 그런 고비를 스스로 불러들여 흔쾌히 걸어가는 자이다. 그래서 꿀을 찾는 벌처럼 절망과 굶주림과 냉정과 비정까지도 달게 받아들여 소화해 내고자 한다. 


  내리는 눈에 

  우리의 눈을 씻자.

  무서운 눈, 찢어진 눈

  차가운 눈, 어둠의 눈

  충혈된 눈, 멍든 눈

  온갖 싫은 눈들은 

  눈과 함께

  눈으로 벗겨내 버리자. 

                 - <눈 내리는 날> 중에서


  내리는 눈은 雪이며 그 눈으로 맑게 씻어야 할 눈은 眼이다. 하늘에서 내라는 순결한 눈으로 오욕을 쫓아온 우리의 눈을 씻어내려는 것이다. 우리의 눈은 그 동안 얼마나 엉뚱한 것을 쫓아왔던가. 부질없는 욕망들에 사로잡혀 진정한 것을 바로 보지 못하였던가. 오욕의 세상을 두드리고 밝히기 위해서는 ‘두려워 애써 감고 있었던’ 자신들의 눈부터 조용히 떠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티없이 맑은 눈’으로 ‘창 밖’을 보는 것, 그래서 ‘그 고운 눈 속에 하얀 꽃잎을 한껏 담아’ 보는 것. 정중규 시의 출발점은 거기에 있다.        


  바위 틈

  벌레 둥지 곁에도

  테라스 고운

  화려한 정원에도

  그 꽃은 볼 수 없데요


  눈을 감으세요

  잔잔한 가슴에 손을 펴봐요


  녹색으로 피어나는 얼굴

  새벽별 비치면 

  파랗게 빛나지요

                            - <파란 꽃> 중에서


  눈으로는 볼 수 없고 마음으로만 봐야 보이는 꽃을 가지게 된 시인은 이제 행복하다. 산과 들, 바위 틈, 테라스 정원에서는 아무리 해도 그 꽃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 꽃을 보고 싶으면 눈을 감으라고 말한다. 잔잔한 가슴에 손을 한 번 펴보라고 말한다. 그 아무도 모르는 곳에 참한 꽃 한 송이가 새록새록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 꽃은 새롭게 발화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오랫동안 자신의 내면에서 홀로 커 온 시의 마음이기도 하다.  


  향연을 베푸는 듯

  천상의 수많은 별들이

  온통 빛나도

  하늘은 저리도 어두운데

  조맣게 타오르는

  한 길 불가에서도

  우리의 가슴은 뜨겁고

  깔깔 즐겁습니다


  불씨개를 주우러 간 사이

  내 홀로 남아

  쓰러지려는 불길을 

  세우려 애를 씁니다. 

                       - <불> 중에서


  ‘하늘엔 보름달 우리에겐 모닥불’이 있다고 노래하는 이 시는 이제 막 발화한 꽃 속에서 오랫동안 간직해온 불덩이 하나가 타오르고 있다. 순정하게 타오르는 그 불꽃으로 하여 별은  더욱 빛나고 어두운 하늘은 밝아지고 가슴은 더 뜨거워진다. ‘쓰러지려는 불길’을 다시 세우는 것은 불씨개가 아니라 실은 우리의 다함없는 ‘사랑’일 것이다. 그것으로 다른 모든 식은 것을 데워낼 때 그 사랑은 더 밝고 아름답게 빛난다.       


  땡볕 아래 새앙쥐

  

  마르고 말라

  

  가볍고 조그맣고


  못 먹었냐?


  못 입었냐?

  

  너도 못 사니?

                         - <너도 못 사니?> 전문

 

  오랫동안 자기 안에 숨어있던 꽃과 불을 발견해낸 시인의 관심은 이제 이웃으로 향한다. 조그맣게 말라있는 새앙쥐가 춥고 배고프지 않을까를 염려하고 있는 위의 시는 그가 이제 자기 내부의 불꽃으로 주변을 감싸안기 시작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런 인식은 외롭고 춥고 배고픈 것이 비단 자신만이 아니라는 자각에서 출발하며 더불어 공존하고 나누어 공생하는 공동체 의식이 구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이웃에게로 또 자연의 동식물과 사물에게로 확장해 가는 세계관은 시의 당연한 진행방향이다. 

  

  나 일어나리라

  그대 오신다면

  

  정다운 발길 소리

  반갑게 맞으며

  나 일어나리라


  내 가슴 잠든 것들

  그때 깨어나리니


  가지마다 열매 열려

  어린 새들 눈뜨고

  꽃몽오리 피어나고

  새싹 맑게 돋우리

                           - <그대 오신다면> 중에서


  여기서의 ‘그대’는 시인이 오랫동안 꿈꾸고 기다려 온 희망의 다른 모습인데 그것을 성취할 감격의 순간이 멀지 않았음을 이 시는 예고하고 있다. ‘아픈 어깨’와 ‘내 가슴 갇힌 것들’을 일으키고 살아나게 하여 ‘굳은 발목 풀리고’ ‘마른 뼈들 따습게 춤추며 일어나리’라는 벅찬 노래가 새롭게 올 그 희망이 얼마나 오랫동안 희구해 온 꿈이었던가를 말해주고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 갈구해 온 개인의 목표이기도 하고, 고난의 역사를 딛고 맞이할 새로운 시대이기도 하며, 그가 믿는 절대자에게로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는 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또다른 시 <햇살>에서 이제 ‘저는 춥지 않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것에 따라 다니는 당신의 훈기’와 ‘당신의 향기’를 느낀 때문이며 ‘비가 오지 않아도‘ 비치는 햇살 속의 ’동그마한 무지개‘를 보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아침입니다‘라는 말로 그런 수락과 찬탄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럴 수 있기까지 시인은 수많은 굴곡과 쓰러짐을 딛고 넘어왔을 것이다. 휠체어로 넘어온 그 험난한 길의 상처들이 한층 더 달디단 열매로 무르익어 가기를 바란다. 


 

2000년 봄날 광안리에서


- 시인 최영철  



어둠 속에 갇힌 불꽃 http://cafe.daum.net/bulk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