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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병원에서 가난한 이들은 실종되었나?
카테고리 : 지금여기 칼럼 | 조회수 : 23732010-02-11 오후 9:28:00
교회병원에서 가난한 이들은 실종되었나?

 

- 병자의 날을 맞이하며

 

2010년 02월 11일 (목) 정중규 mugeoul@hanmail.net

 

   

아무리 의학이 발달해도 질병을 지구상에서 완전히 퇴치하진 못하니, 난치병 극복에 성공했다지만 그 수만큼 새로운 질병이 다시 발생하는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인간의 한계이리라. 오히려 지극히 비인간적인 현대산업문명이 인간환경을 극도로 악화시켜 아예 인류의 숙원인 무병의 꿈을 언감생심케 하고 있다.

질병은 그 어떤 것이든 인간 삶의 온전함을 다치게 하고 고통과 소외감으로 병자들을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질병은 또한 잘못된 우리 삶에 대한 경종이요 자기 자신을 차분히 직시토록 하여 올바른 삶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암시이기도 하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질병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구원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구약시대에 질병은 죄의 결과물로 여겨지고, 병자들은 죄인 취급을 당하며 공동체로부터 격리되고 소외당했지만 그럴지라도 모든 질병엔 하느님의 뜻이 담겨있다고 여겼기에 치유시편들에서 볼 수 있듯 병자들에 대한 치유행위는 종교생활의 중심을 차지했었다. 그 전통은 ‘상처받은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께 와서 아름답게 완성된다.

개인의 질병도 공동체의 불건강함을 반영

1992년 5월 13일,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의료인과 간호인들의 헌신적 봉사를 격려하기 위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인 2월 11일을 ‘병자의 날’을 제정한 것은 이런 전통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세계 병자의 날’이 우리나라에서 개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가톨릭계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이들 외에 ‘병자의 날’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기만 하다. 이는 질병 자체를 병자 개인의 문제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물론 질병이 개인의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올 수도 있지만 각 민족마다 국가마다 질병의 종류나 발생률이 전혀 다름을 볼 때, 개인의 질병이란 것도 결국 공동체의 불건강함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사회적 관심과 공동체적 대처가 요구된다.

특히 지난 2천년 교회사에서 의료사업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을 기조로 하며 공동체성의 회복을 꾀하는 선교적 지상과제였다. 창시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목에 기원을 두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그분은 몸소 “나는 건강한 사람이 아닌 병자들을 구하기 위해 온 의사”라고 자신을 드러내고서 병자들에 대한 치유행위를 구원사업의 핵심요소로 여기며 공생활동안 수없이 많은 병자들을 고쳐주셨다. 그중에서도 가난하고 소외당한 병자들에 대해선 더욱 각별한 사랑을 드러내는 ‘치유의 과정’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전하고 그들이 소외감에서 벗어나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배려하셨다.

성경에는 그분과 만나고 치유를 받은 한센씨 환자, 중풍병자, 간질환자, 귀신들린 자, 우울증, 정신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나온다. 그 시대에 그들은 질병을 얻음과 동시에 소외계층의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그로써 더욱 병세가 악화되고 고착되는 악순환의 구조 속에서 병자들은 철저히 사회에서 배제 당했었다.

몸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정신도

그분께서 그들의 질병을 치유시키는 것과 함께 인간존엄성을 회복시키신 까닭이 거기에 있다. 그분의 치유행위는 그 자체가 부활의 과정이었다. 한없이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시켜 공동체로 복귀토록 도와주셨다. 병자를 다루는 그분의 모습은 지극정성이라는 표현 그대로 섬세하고 부드럽기만 하다. 그분이 바라본 것은 병자의 증상만이 아니라 병자 그 자체였다. 그분은 치유기적을 행하실 때, eye contact라는 의미 그대로 먼저 병자의 눈 속으로 들어가신다. 눈과 눈이 마주쳐 상통하여 내면 깊숙이 박혀 있던 ‘사람됨’을 이끌어내면서 거기 치유기적이 일어난다. 탁월한 공감능력이다. 그를 통해 병자들은 질병만 나은 것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으로 부활케 되었던 것이다.

몸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도 정신도 함께 살리는 그야말로 인간을 살리는 전인적인 치유행위, 이미 WHO에서도 건강은 단순히 질병이나 불구가 없는 것만이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그리고 영적으로 행복한 역동적인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럴 때 가톨릭계 의료기관으로 눈길을 돌려보면 시설이나 의료기계의 첨단화와 의료기술의 수준은 높아졌는지 모르지만, 그리스도 영성 안에서의 휴먼서비스 정신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지 않은가 싶은 염려스러운 현실이다.

교회 안에서 실종된 인술 회복해야..

무엇보다 교회 의료사업의 기원이요 주체였던 가난한 이들이 의료기관으로부터 얼마만한 환대를 받고 있는 것일까. 한 목숨이 온 우주보다 더 소중하다는 복음적 가치를 바탕으로 하여 전인적 완치를 돕기는커녕, 일반의료기관과 다를 바 없이 시장논리 경제논리 상업주의에 함몰된 채 차라리 과거의 자선적 의료사업보다 못한 경직된 자세로 그들을 주눅 들게 하고 발걸음을 돌리게 하지는 않는가. ‘의료의 질’을 참으로 높이려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무슨 호텔식이나 카페 분위기식의 병원시설 첨단화’ 같은 것보단 오히려 그리스도의 영성 안에서 우선 ‘실종된 인술’을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교회의 의료사업에서도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인 생명존중과 인간존중의 그리스도 영성이 온전히 회복되고 실천되기를, 대증요법적인 치료에만 그치는 것이 아닌 전인적인 완치를 꾀하는 사랑의 손길에 의해 병자들의 가슴마다 구원의 빛이 깃드는 부활이 이루어지기를 바래본다.

병자들은 병고로 갇혀 어두운 침상에 내팽개쳐져 고독만 곱씹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서서 그들의 사회복귀를 도와야 할 엄연한 사회구성원들이다. 병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기리는 ‘병자의 날’을 온 교회가 뜻 깊게 보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정중규

다음카페 ‘어둠 속에 갇힌 불꽃’(http://cafe.daum.net/bulkot) 지기,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연구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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