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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일째 강남 네거리 CCTV 위에 사람이 있다 / 정중규
카테고리 : 기고 | 조회수 : 16092020-04-18 오전 3:51:00

313일째 강남 네거리 CCTV 위에 사람이 있다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 단식농성 언제 끝날 것인가

정중규
입력 2020.4.18.

 삼성해고자 김용희씨가 서울 서초구 강남역 삼성생명 빌딩앞 CCTV철탑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삼성준법감시위원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 최고 경영진에게 재발방지 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며 권고한 △ 경영권 승계 관련 △ 무노조 경영 방침 등 노동 관련 △ 시민사회 소통 관련 등 3가지 최우선 준법 의제에 대한 대국민 사과 이행 기한이 4월 10일에서 5월 11일로 한 달 늦춰졌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중심 강남 한복판 네거리 가운데 25m 높이로 솟아있는 CCTV 철탑 위 새둥지 같은 좁은 공간에서 김용희 삼성해고노동자는 폭염과 태풍, 칼바람을 견디며 300일을 보내고 또다시 목숨 걸고 단식농성 중인데 이들은 이리도 태평스러운가!

18일이 고공농성 313일째 되는 날이다. 100일째, 200일째, 300일째 그렇게 애써 기억을 일깨우며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삼성공화국이라 일컬어지는 이 대한민국에서 초거대 자본을 상대로 한 사람의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투쟁하는 이 현실이 안타까워 늘 가슴이 먹먹했다.

인류가 수백만 년 전 아프리카 열대우림 나무 위에서 내려와 두 발로 걷고 땅 위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사람에게 발을 땅에 딛지 않고 지내는 것이 얼마나 불안하면 고소공포증까지 생겼을 것인가. 하지만 열악한 노동현장에다 정리해고와 임금체불에 시달리는 이 땅의 노동자들에게는 고공농성이 이제 익숙하기만 하다. 누가 그들을 그 높은 곳으로 밀어 올렸는가. 거기에 있는 것은 김용희 개인이 아니라 노동자들의 삶 전체다.

문득 9년 전 기억이 난다. 2011년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서 309일간 고공 농성을 펼쳤던 김진숙 지도위원을 격려하기 위해 '희망버스'와 함께 거리에서 노숙하며 밤을 새우던 그 때 그 시절. 그 때나 지금이나 노동자의 현실은 그리 나아지지 않아 보인다.

지난 4월 7일에는 열린민주당 선거유세단이 철탑 위에서 단식으로 쓰러져가는 노동자가 내려다보는 그 밑에 나타나 마치 딴나라에서 온 듯 음악과 율동을 곁들여 선거운동하고 갔다. 이런 행태는 단순히 '눈치 없음'을 지나 이 사회의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 없음과 공감능력 부재를 여실 없이 드러내 준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300일째 지나 다시 단식투쟁으로 골리앗 삼성에 맞서는 다윗 김용희

나라 전체가 코로나19 사태에 올인하고 있지만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사람, 김용희. 지난 4월 4일 오후 고공농성 300일을 맞은 그를 응원하기 위해 시민들이 철탑 아래에서 개최한 집회에 참석하고 귀가하는데, 페이스북으로 "재벌 적폐청산투쟁에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동지들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4월 6일 월요일부터 단식투쟁으로 끝장내겠습니다. 하루빨리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이제 죽이고 살리는 것은 삼성이 할 일이다. 삼성!! 답하라!!"라는 그의 메시지가 올라와 있었다. 골리앗 삼성을 향한 다윗 김용희의 새로운 싸움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김용희 씨의 삼성과의 네버 앤딩 스토리는 1982년 삼성항공 창원1공장에 입사하면서 시작된다. 1991년 노조 설립을 시도하다 해고된 뒤 1994년 삼성물산으로 복직했지만 이후 1년 만에 경남지역 삼성노조 설립위원장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1995년 해고됐다. 해고된 후 24년간 복직투쟁하다 정년을 한 달 앞둔 지난해 6월 10일 삼성재벌과의 마지막 싸움이라는 각오로 ▲삼성재벌의 진정성 있는 사과 ▲삼성계열사 명예복직 ▲해고기간 25년 임금배상 등을 요구하며 본사가 보이는 철탑 위로 올라가 농성을 시작했다.

그의 투쟁은 김용희라는 억울한 한 노동자의 한풀이가 아니라 자본을 향해 비인간적인 노동현장을 인간답게 해달라고 촉구하는 대한민국 노동자 투쟁 그 상징적 깃발이 되었다.

그날 '삼성피해자공동행동'은 삼성본관 건물 주변과 강남역 네거리를 도는 차량시위와 뚜벅이 행진을 했다. 차량행진을 마치고 철탑 아래에서 진행된 마무리 집회에서 크레인을 타고 농성 중인 김용희 씨를 만나고 온 담당 의사는 "의학적으로는 살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 어느 시기에는 그래도 한 가족이었던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는 삼성의 비윤리적인 행태, 여기에 그 귀에 익은 삼성의 광고 카피 '또 하나의 가족'은 어디 있는가. 휴먼테크를 추구하는 삼성이라면 기업정신에도 휴머니즘이 담겨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노조는 안 된다", 그 80년 전의 구태스러운 지시를 지금껏 따르겠다고 버티는 삼성이 제4차 산업혁명시대를 선도한다는 글로벌 기업이 맞는가.

지난 3월 18일 열린 삼성전자 제51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어느 주주가 "강남역 철탑 위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강아지가 철탑 위에 있어도 300일 다 되는 시간 동안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삼성의 노동탄압이 세계로 퍼져가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 글로벌경영이 가능한가"라고 절규어린 질문을 했는데 삼성은 이에 대답해야할 것이다. 
 
▲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 향해 아래에서 마음 모으기 강남역 네거리 CCTV 철탑 위에서 농성 중인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씨를 위한 집중 기도회 모습에 참석한 필자
ⓒ 정중규

삼성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미래 희망 정도 결정

오래 전부터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 심정적 지지를 보내면서 삼성의 변화를 외쳐왔고, 공룡재벌 삼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 미래 희망 정도가 결정될 것이라고 믿고 있는 내게 삼성의 아집어린 이런 행태는 실망을 넘어 분노하게 만든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도 있지만, 삼성 문제는 단순히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누구의 "삼성이 망해야 한국이 산다"는 절규도 대한민국에서 삼성은 단순히 하나의 기업이 아니라는 역설적 표현이다. 우리 사회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에서 삼성의 변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고공농성하려고 굴뚝 위로, 크레인 위로, 철탑 위로 오르는 현실. 부익부빈익빈 양극화 심화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가난한 이들이 죽음의 유혹에 흔들리고 실제로도 죽어나가는 민생도탄 시대. '88만원 세대'를 지나 '3포 세대'에 '열정페이 세대'로 전락해가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는 청년들. 한번 무너지면 다시는 일어날 수 없게 패자부활전조차 용납하지 않는 승자독식 사회, 21세기 선진화를 추구한다는 이 나라에서 보통사람들은 아직도 지극히 후진적인 생존권 투쟁에 목숨 걸어야 할 판이다.

김용희는 한 개인이 아니다. 아픔을 겪고 있는 그를 강 건너 불 보듯 하며 사회 전체가 무기력증에 빠져가는 듯한 이런 상황은, 마치 '사람은 모두 죽는다'는 것을 익히 알면서도 스스로의 죽음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으로 믿는 것과 같다. 연대의식이 한없이 무디어지고 무너져가고 있는 이런 사회공동체가 섬뜩하기조차 하다.

하루 빨리 그가 살아서 땅으로 내려오도록 삼성은 물론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가 나서야할 것이다. 김상조, 장하성 등 언필칭 삼성재벌개혁가들이 즐비한 문재인 정권도 수수방관하면 안 될 것이다. 동시에 5월 11일 거행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기대하고 그것이 우리 사회 선진화에 의미 있는 변곡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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