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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완한 식민지 진화론2
카테고리 : 밝은 세상을 위해 | 조회수 : 382019-10-19 오후 5:48:00

내가 보완한 식민지 진화론2

 

강민호

 

내가 보완한 식민지 진화론 1편을 쓰고 바로 2편을 쓰고 싶었었는데, 내 인생을 바꾸어 주신 분과 약속이 있었고 스케줄도 있어서 조금 늦어졌다. 전편의 이어서 김용삼교수의 논리에 허점들을 말하겠다.

 

반일감정의 뿌리에 대해서 설명하는 강의를 들으면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두 마리 다 놓쳐다는 속담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반일감정을 가지게 된 원인과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300년 앞서셔 선진문화를 가지게 된 것에 대해 두 주제 다 설명해주려고 한다가 두 가지에 대해서 명쾌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용삼교수는 이 두 가지 주제에 대해서 직접적인 관련 있는 소제들로 이야기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듣기에는 남의 다리를 긁어주는 것 같은 이야기로 들렸다. 일본의 개항은 김용삼교수의 말대로 우리나라보다 300년이 앞서거나 보다도 더 50년 전이다. 포르스칼, 영국 등 서양의 국가들과 무역했고 영국인의 도움으로 대양을 건널 수 있는 배도 제작에서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멕시코까지 항해한 적도 있다.

 

같은 시기에 예송논쟁이 일어난 정도로 성리학사회로 퇴행하는 조선에 비해, 일본은 난학(蘭學)이란 네덜란드에서 실용적인 학문이 운행했다. 수공업이 발달하여 유럽의 부르주와와 같은 조닌이란 계급이 등장해서 일본은 초기 근대화 사회에서 진입하고 있었다.

 

나 같이면 이런 일본사회의 변화에 비해 반면에 조선은 오히려 임진왜란 이전보다 주자가례에 의한 유교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사회였음을 말했을 것이다. 특히나 청나라에서 돌아온 소현세자가 서양의 문물들을 가져와서, 인조에게 조선의 문을 개방해야  하다고 주장하다가 의문사로 세상을 떠나 일은 조선의 폐쇄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런 조선의 폐쇄성이 교린 상대로 얕보던 일본에게 지배받게 되었다고 말했을 것이다.

 

엉뚱하게 김용삼교수는 조선에서는 동공들이 양반들의 애장품들 만들었던 비해, 임진왜란 때 끌러간 조선인 동공들의 작품들이 유럽으로 수출되었다는 이야기 했다. 물론 일본이 조선에 비해 개방된 나라이란 사실을 말하고 싶어서 말했지만 미천했던 일본의 문화를 내포되어 있는 말로 들릴 수도 있다. 임진왜란이 약탈을 하기 위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었음 알러주는 말로 들릴 수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말들을 들으면서 김용삼교수의 역사관이 무엇일가 생각했다. 그가 하는 이완용에 대한 강의를 들으면서 드라마 역사관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특정 역사적인 인물을 역사드라마의 주제에 따라 다른 성격으로 가공하는 성격하는 것이 드라마 역사관이다.

 

폭군 연산군이 애정결핍과 학업에 대한 강한 스트레스를 청소년 시기에 경험해서 폭군이 되었고, 그의 폭정도 나름의 왕권강화로 평가 할 수 있는 것이 드라마역사관이다. 권력에 이동에 따라 독립협회, 친미, 친러, 친일로 옮겨왔던 이완용도 김용삼교수와 같은 드라마역사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의해서 훌륭한 정치가로 제 창조 될 수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생각이 이렇게 되자 김용삼교수가 잘못 알고 있는 정조시대, 일본 애도시대에 대한 잘못 된 지식과 고증학 양면학에, 대한 잘못 된 지식들을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소귀에다 역사책을 읽어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3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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