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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 사랑이 시작될 거야
카테고리 : 연필로 그리는 동화 | 조회수 : 632019-01-16 오후 4:39:00
우산 속에서 꽃 핀 그녀와 그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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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 이야기

커튼 사이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던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번호에 한참을 망설이다 받았다. 어디선가 들은 것 같은 목소리. 바로 고교 동창이었다.

“정말 오랜만이다. 그런데 번호는 어떻게 알고...”
“요즘 세상에 마음만 먹으면 번호쯤이야 간단하게 알 수 있지. 불쑥 전화해서 싫은 건 아니지?”
“그럼~반갑다. 이게 몇 년 만이야...”

졸업하고 9년 만에 안부를 주고받는 현민은 예전 그대로였다. 대학 동기들과 시작한 사업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첫 출발을 하는 자리에 참석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전교회장을 하며 리더십이 남다르더니 벌써 회사 대표가 되었다.

작은 시작이지만 그의 설명대로라면 앞으로가 기대되는 일이다. 보고 싶은 동기들 얼굴도 볼 수 있다는 마음으로 현민의 초대에 기꺼이 가겠다는 답을 남겼다. 2주 후, 화분을 들고 찾은 그곳에서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기억 속에 숨겨 두었던 그 사람을...
“안녕하세요. 현민이 동창들은 다 미남 미녀 시네요. 하하.”

나를 몰라보는 그를 계속 마주할 수 없어 축하 인사만 건네고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래... 나만 그랬어. 나만 바보처럼...”

그날 이후 위장병에 다시 시달리며 잠을 빼앗겼다. 깊은 밤의 속 쓰림이 내 몸을 흔들어 깨웠다. 그렇게 몇 날을 보내고 병원에서 받아 온 약을 뒤적이며 휴일 오후 시간의 쓸쓸함을 달래고 있을 때 또다시 현민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본에서 손님이 오는데 통역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프리랜서 번역가인 가난한 내게 현민의 제안은 과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렇게 많이 안 받아도 돼. 동창인데 도와줄 수도 있는데...”
“아냐, 공과 사는 분명히 해야지. 우리 회사의 미래가 달린 중요한 미팅이야. 네 역할이 중요해. 그러니까 다른 부담은 갖지 마.”

통역을 위해 나간 자리에서 나는 다시 그 사람을 만났다. 그 사람은 현민과 공동대표로 그 자리에 있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려는데 비가 내렸다. 그 사람과 처음 우산을 나란히 쓰던 그날처럼. 가방에서 우산을 꺼내드는 순간 그 사람이 내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

“우산이 없어서... 차 있는 데까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보내는 그의 말과 미소에 순간 차가운 얼음이 온몸을 감싸는 느낌이 들었다. 알 수 없는 서운함에 내 마음이 서늘해졌다. 우산을 높이 들어 그의 키에 맞추고 걷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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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같이 쓰는 거 처음 아닌데... 혹시 기억 안 나요?”

잠시 일시정지되어 있던 내 심장이 다시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저... 저를 알고 계셨던 거예요?"

그는 말없이 걷기만 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한 탓에 조금씩 절뚝거리는 그가 혹시라도 비에 몸이 젖을까 봐 우산을 그의 쪽으로 기울였다. 걷다 말고 잠시 걸음을 멈추던 그는 내 우산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다시 말없이 걷기 시작했다.

“저... 옷이 젖는 것 같은데...”
“희수 씨 어깨도 젖었어요.”

그가 젖을까 봐 신경 쓰느라 내 어깨가 비를 맞고 있는 건 몰랐다.

“차 어디 있어요?”
“우리 얘기 좀 할까요?”
“전 할 말 없어요.”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말없이 그의 차가 있는 쪽으로 다시 걸었고 그의 차에 함께 했다.

“여기서 잠깐 얘기하시죠.”
“희수 씨는 나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역시 기억 못 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희수 씨가 나를 본 그날에는 내가 지금과는 달랐으니까.”

“내가 고2 때였어요. 휴일이라 시내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서 막 내리려고 하는데 오늘처럼 겨울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일단 버스에서 내렸는데 겨울비답지 않게 너무 많이 와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때 희수 씨가 버스에서 우산을 들고 내리는 걸 봤어요. 무작정 희수 씨 우산 안으로 들어섰죠. 그때 중학생이었는데... 어린 친구가 당황하지도 않고 슬쩍 곁눈으로 보더니...”
“‘전 ㅇㅇ아파트 가요.’라고 말했었죠.”

나는 그의 말을 가로채며 내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것을 꺼내 보였다.

“이제 기억나요?”
“......”
“나도 그 옆 아파트에 산다고 했었잖아요.”
“네. 그래서 우산 필요 없다고...”
“사실은 집이 반대편이었어요.
“......”
“그리고...”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난 그의 사고를 알고 있었다. 그가 사고가 나고 병원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았다.

시내를 가는 버스에 그가 몸을 싣는 것을 보고 무작정 따라 탔었고 다시 그를 따라 내렸다.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등굣길은 늘 설렘으로 가득했다. 그가 나를 모르는 그 모든 시간에 나는 그를 지켜보았고 그가 다니는 대학을 들어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그의 그림자를 따라다녔지만 그는 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장애를 이겨내고 환하게 웃으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때로는 그가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며 그의 옆을 스치기도 했지만 그의 옆에는 늘 다른 여자가 있었다. 그를 잊고 싶어 일본을 갔었고 그가 없는 학교로 돌아와 늦은 졸업을 했다. 그리고 다시 만난 그는 나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나... 희수 씨 다시 만나서 좋아요. 희수 씨를 다시 만난 오늘 이렇게 또 겨울비가 여름 장마처럼 내려주는 것도 감사하고요.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내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가 내 존재를 의미 없이 기억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 사람의 마음을 알았고 지금 나를 보고 있는 그의 눈과 마주하고 있고 그의 마음이 나를 향하고 있는 순간이 행복하다.

“희수 씨 제가 장애인이어도 괜찮다면...”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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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가로채며 대답하는 나를 보며 그는 많이 놀라는 듯했다. 나는 그의 품으로 들어갔다. 요란한 빗소리가 우리의 사랑을 축하해주는 듯했다. 나의 사랑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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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이야기

매일 아침 등굣길에서 그녀를 만났다. 중3답지 않은 의젓함이 묻어나는 그녀가 어느 날부터 내 눈에 들어왔고 길지 않은 시간에 내 마음 가득 그녀에 대한 생각으로 채워졌다. 내가 고3이 되고 그녀가 고1이 되면 꼭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시내를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던 휴일에 그녀를 그곳에서 만난 건 하늘이 내게 준 큰 행운인 것만 같았다. 아마 그녀도 시내를 가려던 참이었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도 그녀와 같은 버스를 타기를 바라고 또 바랐었는데... 역시 하늘은 내 편이었다.

그녀가 버스에 타는 걸 확인하는 순간 너무 좋아서 ‘야~호’하며 소리를 지를 뻔했다. 사람 눈은 같은가 보다. 민철이 녀석이 그녀를 눈여겨보고 있는 듯했다. 내가 먼저 고백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매일 했다.

“오늘이 기회인가...”

버스에서 내리는데 비가 왔다. 우산을 펼쳐드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우산 속으로 내 몸을 던지듯 뛰어들었다. 늘 지켜보던 모습 그대로 그녀는 의젓하게 나를 받아주었다.

그녀 집 앞에서 건네주는 우산을 뒤로하고 서둘러 그녀에게서 도망쳤다. 눈치도 없이 쿵쾅거리는 내 심장소리가 혹시라도 그녀 귀에 들릴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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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녀 앞에 더 이상 나설 수 없었던 건 가족여행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사고 때문이다.
한쪽 다리를 잃는다는 것보다 더 이상 그녀를 볼 수 없게 되어버린 현실이 더 끔찍했다.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 같았던 시간을 보내고 나는 다시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

살아야 했으니까.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동기들보다 1년 늦었지만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장애인으로 사는 새로운 삶에 익숙해질 무렵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났다. 어느새 대학생이 된 그녀는 더 예쁜 모습이었다.

마음은 그녀에게 달려가고 있었지만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그녀 앞에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나설 수가 없었다. 호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이성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 나를 설레게 했던 그녀의 존재 때문인지 마음이 열리지 않았다.

다가온 이성들도 연인보다는 친구로 지내는 것을 선택했고 나는 그들의 그런 선택이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녀에게 다가갈 용기는 없었지만 학교에서 마주치는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런데 그녀가 일본으로 가고 난 후,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보지 않았던 것이 후회되었다. 다시 만나게 된다면 꼭 고백이라도 해보고 싶었다.

대학에서 만난 현민이 그녀와 동창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졸업을 하고 몇 년 후였다. 졸업하면 꼭 함께 해보자던 일을 현민과 시작하면서였다. 현민과 고교 동창인 해진 씨와 현민이 우연히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면서 그녀에 대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현민에게 털어놓은 그날 이후 현민은 그녀와 내가 잘 되기를 바랐었다. 그리고 그녀가 우리 일에 필요한 일본어에 능숙하다는 사실이 기뻤다.

사무실로 축하해주러 온 그녀는 바쁜 일 때문인지 화분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가 벼렸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서운함에 마음 가득 그늘이 졌다.

일본어 통역이 필요할 때 그녀에게 부탁하자는 현민의 기특한 제안이 없었다면 그날 바로 그녀의 뒤를 따라갔을 것이다. 너무 서두르지 말라는 현민의 충고대로 기회를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그녀를 만났다. 하늘은 역시 내 편인 듯했다. 그날처럼 비가 내렸다. 그녀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어린 소녀에서 아름다운 여자가 되어있었다.

대학에서 그녀를 만났지만 달라진 내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모른 척했다. 그녀도 나를 못 알아본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기억 어디엔가 내가 있었다는 게 감사했다.

“희수 씨 제가 장애인이어도 괜찮다면...”
“괜찮아요. 상관없어요.”

어렵게 꺼내 든 말에 그녀는 너무 쉽게 대답했다. 순간 내가 당황할 만큼.

그녀와 사랑을 시작하고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잃어버린 한쪽 다리보다 그녀 앞에 설 수 없다는 것에 더 슬퍼하고 있을 때 그녀는 병실 밖에서 나를 위해 울고 있었다는 것을. 달라진 내 모습에도 그녀는 처음처럼 나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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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들어와서도 우연인 줄 알았던 모든 스침이 그녀가 연출한 것들이었다는 것이 몹시도 가슴이 아팠다. 서로 용기를 내어 봤더라면 좀 더 일찍 우리는 이 아름다운 사랑을 했을 텐데...

하지만 우리는 지금, 서로를 그리워하던 긴 시간의 아쉬움을 더 큰 사랑으로 채우고 있다. 나의 사랑은 이렇게 커져만 간다.


-글. 그림 최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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